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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March 20, 2020
Wednesday, August 13, 2014
화장예배
가. 화장 시 구비 서류
병사 : 화장 신고필증 1부, 고인 주민등록등본 1부, 신청인 주민등록증
사고사/사인 미상 : 화장 신고필증 1부, 고인 주민등록등본 1부,
신청인 주민등록증, 검사지휘서
관외 : 관할 읍, 면, 동에서 사망 신고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망 :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1부 외에 주재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발급한 사망확인서 1부를 거주지 동사무소민원실에 제출,
화장신고필증을 교부
※ 신고서류는 반드시 원본이어야 하며, 복사본은 사용할 수 없음
반드시 사망진단서를 떼어 관할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고
화장 신고증을 교부 후 가능
나. 화장 시 주의점
입관할 때 고인의 유품 중에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넣기 않는다.
화장장에 도착하면 사무실에 가서 화장 신고증을 제출하고
안내에 따라 화장 순서를 기다린다.
화장의 경우는 화장터의 상황이 예식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당시의 상황을 잘 고려하여 상황에 맞게 진행하여야 한다.
영구가 화로에 들어갈 때까지 찬양을 부른 후 화로에 들어간 후 기다리는 동안
성경말씀과 설교, 기도와 찬송, 축도를 진행하면 된다
다. 화장예배 순서
묵도 : 오늘 우리는 고 ○○○(직분)님의 육신의 화장을 위한 엄숙한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 기도하심으로 화장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말씀
축도
※ 관을 화장장 화구 앞에 안치하고 관망실에 있는 빈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또는 화장장에 도착하여 영구차에 관을 모신 문을 열어 놓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무방하다.
라. 화장할 경우 드리는 기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없는 데에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크신 뜻과 은혜를 따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의 형제(자매) ○○○ 성도의
시신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기옵고 흙은 흙으로, 티끌은 티끌로 돌리옵니다.
주님께서 주셨사옵고 주님께서 거두시는 줄 믿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주님!
형제(자매)의 육신은 지금 우리 앞에서 사라지고 있사오나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 주님의 나라에 임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이별 때문에 슬퍼하시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사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위로를 통하여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 화장예배에 따른 상식
① 화장장에 도착하면 직원들이 나와서 안내한다. 운구 전에 관리사무실에
가서,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화장신고서를 작성한다.
② 안치실에 운구한 후 안치대 번호를 상주는 확인하고 직원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휴게실에서 기다리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③ 입로 시간이 되어 직원이 호출하면 모든 유족들은 안내자의 지시를 따라
시신운반대를 따라 화장로 입구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영정사진을 올려놓는다.
④ 시신을 입로한 후 문을 닫으면 교역자가 화장장(하관)예배를 드린다.
⑤ 주변이 울음바다로 소란함으로 큰 소리로 예배를 드린다.
⑥ 예배가 끝나면 유족들과 인사하고 장례사역팀은 철수하고
유족들은 화장이 끝날 때까지(2~3시간 소요) 기다렸다가
유골함을 받아 유족끼리 납골당이나 산골장으로 간다
(교역자가 원하면 동행해도 좋다)
⑦ 장례사역팀이 철수할 때는 유족들에게 관례임을 설명하여 오해가 없도록 한다.
⑧ 유골을 매장하는 경우는 매장지까지 동행하여 하관예배를 드린다.
⑨ 납골당이나 산골절차는 해당 장소에 가서 안내자의 인도에 따른다
병사 : 화장 신고필증 1부, 고인 주민등록등본 1부, 신청인 주민등록증
사고사/사인 미상 : 화장 신고필증 1부, 고인 주민등록등본 1부,
신청인 주민등록증, 검사지휘서
관외 : 관할 읍, 면, 동에서 사망 신고
외국인이 국내에서 사망 : 사망진단서 또는 사체검안서 1부 외에 주재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발급한 사망확인서 1부를 거주지 동사무소민원실에 제출,
화장신고필증을 교부
※ 신고서류는 반드시 원본이어야 하며, 복사본은 사용할 수 없음
반드시 사망진단서를 떼어 관할 동사무소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고
화장 신고증을 교부 후 가능
나. 화장 시 주의점
입관할 때 고인의 유품 중에 불에 타지 않는 것은 넣기 않는다.
화장장에 도착하면 사무실에 가서 화장 신고증을 제출하고
안내에 따라 화장 순서를 기다린다.
화장의 경우는 화장터의 상황이 예식을 진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당시의 상황을 잘 고려하여 상황에 맞게 진행하여야 한다.
영구가 화로에 들어갈 때까지 찬양을 부른 후 화로에 들어간 후 기다리는 동안
성경말씀과 설교, 기도와 찬송, 축도를 진행하면 된다
다. 화장예배 순서
묵도 : 오늘 우리는 고 ○○○(직분)님의 육신의 화장을 위한 엄숙한 자리에 섰습니다.
이제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묵상 기도하심으로 화장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말씀
축도
※ 관을 화장장 화구 앞에 안치하고 관망실에 있는 빈소에서 예배를 드린다.
또는 화장장에 도착하여 영구차에 관을 모신 문을 열어 놓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려도 무방하다.
라. 화장할 경우 드리는 기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없는 데에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의 크신 뜻과 은혜를 따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의 형제(자매) ○○○ 성도의
시신을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맡기옵고 흙은 흙으로, 티끌은 티끌로 돌리옵니다.
주님께서 주셨사옵고 주님께서 거두시는 줄 믿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주님!
형제(자매)의 육신은 지금 우리 앞에서 사라지고 있사오나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 주님의 나라에 임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육신의 이별 때문에 슬퍼하시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사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위로를 통하여 그리스도 부활의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주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 화장예배에 따른 상식
① 화장장에 도착하면 직원들이 나와서 안내한다. 운구 전에 관리사무실에
가서, 사망진단서를 제출하고 화장신고서를 작성한다.
② 안치실에 운구한 후 안치대 번호를 상주는 확인하고 직원의 호출이 있을 때까지
휴게실에서 기다리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③ 입로 시간이 되어 직원이 호출하면 모든 유족들은 안내자의 지시를 따라
시신운반대를 따라 화장로 입구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영정사진을 올려놓는다.
④ 시신을 입로한 후 문을 닫으면 교역자가 화장장(하관)예배를 드린다.
⑤ 주변이 울음바다로 소란함으로 큰 소리로 예배를 드린다.
⑥ 예배가 끝나면 유족들과 인사하고 장례사역팀은 철수하고
유족들은 화장이 끝날 때까지(2~3시간 소요) 기다렸다가
유골함을 받아 유족끼리 납골당이나 산골장으로 간다
(교역자가 원하면 동행해도 좋다)
⑦ 장례사역팀이 철수할 때는 유족들에게 관례임을 설명하여 오해가 없도록 한다.
⑧ 유골을 매장하는 경우는 매장지까지 동행하여 하관예배를 드린다.
⑨ 납골당이나 산골절차는 해당 장소에 가서 안내자의 인도에 따른다
인용: http://chy55517.egloos.com/m/3520550
Tuesday, July 15, 2008
기독교 입문 과정(시온연합감리교회)
1. 제자가 되는 단계 (혹은, 기독교 입문 단계)
(1) 방문과 적응단계(계단/선행은총): 방문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을 소개하고, 새신자가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준비가 되었을 때, 학습자로 받아들이는 환영의식을 거행한다. 기존의 교인들은 가르치기보다는 듣기에 힘쓰자! 특히, 모든 단계 속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에 힘쓴다. 진심으로 환영하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편안히 느끼고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2) 학습/기본교육 단계 (현관/선행은총): 예배, 말씀, 기도와 삶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묵상을 통해 세례받을 준비를 한다. 가능하면, 소그룹 모임(학습자반)을 통해서 함께 만난다. 이 단계에서도 서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와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돕는다. 그동안 많은 교회들이 이 단계를 소홀히 해왔으나, 최소한 6개월 (많게는 9개월)의 시간을 통해, 세례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례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사순절 첫 주나 대림절 첫 주에 세례 후보자를 받아들이는 환영의식을 거행한다. (-> 현재, 저희 교회에서는 5주과정의 학습자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정착이 되면, 6개월 이상의 과정으로 연장할 계획입니다.)
(3) 세례받는 단계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칭의의 은총): 주로 사순절이나 강림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세례 교육을 하며, 이 때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회개는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돌아서는 것), 세례와 관련된 말씀과 함께 사도신경, 주기도문의 의미를 배우고 암송한다. 집중적인 기도, 금식, 예배등을 통해 준비된 후보는 주로 부활절이나 주님의 수세주일에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도 참예한다.
(4) 계속 성장하는 단계 (집안/성화의 은총): 세례는 성화의 삶의 시작이다. 교회생활과 선교에 동참하고, 계속 양육받으며, 일상 속에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한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이나 세례받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신앙과 삶의 본이 될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한다. 온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교회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교인으로서의 의무를 잘 감당한다.
2. 기독교 입문과정 (새신자반과 학습자반)
(1) 저희 교회에 새로 오신 세례교인 가운데 등록교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새신자반(5주 과정)에 먼저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은 어떤 책이고 어떻게 읽을 것인지, 감리교회가 어떤 곳인지 등 신앙생활의 기본을 배우면서, 교회의 분위기와 방향에 익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 과정을 마치신 분들은 입교의식을 통해 정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새신자반은 매주일 친교 후 사무실에서 모입니다. 세례받지 않으신 분은 학습자반 과정을 마치셔야 합니다.
(2) 세례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학습자반에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습자반 역시 5주 과정이며, 성경, 예배, 기도, 신앙과 삶, 세례의 의미와 실제 등을 배우게 됩니다. 주로 금요일 오후 4시에 만나고 있고, 개인사정에 따라 시간변동이 가능합니다.
(3) 새신자반과 학습자반을 포함한 모든 양육과 성장의 과정을 "기독교 입문과정"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뿐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의 과정 (혹은 제자화의 과정) 전체가 기독교 입문과정입니다. 늘 동행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서로의 온기로 인해 따뜻한 이 길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3. 새신자 맞이 (아래는 기존 교인들을 위한 글)
기독교 입문과정을 돕기위해, 저희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지고 새신자를 맞이하고, 기존의 회중들을 양육합니다.
(1) 연합 감리교회의 장정에 보면 "교회의 선교(사명)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개체교회는 제자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현장을 제공해 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또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 이룬 교회는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 모든 방문자를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먼저 사랑하시고 받아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 만나듯이 환영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하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편안히 느끼고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다른 교회에 적을 둔 사람은 가능하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지, 단순한 교세의 확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온 교회가 "제자를 만들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기본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건강한 교회, 오고싶은 교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새신자나 방문자를 맞이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초청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그 진리를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고,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회중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의 살아있는 모델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와 삶의 일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생활과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배우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4)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뒤를 똑같이 따르라고 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의 걸음을 걷는 제자화의 과정 중에 있으며, 사람마다 신앙의 발달단계나 상황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조금 먼저 시작했을 뿐이고, 우리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기존의 회중들을 통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 함께 걷는 제자의 삶)
(5) 제자화는 교회조직이 아닌,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를 위해, 교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6) 제자화 사역은 프로그램이나 일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사역입니다. 제자를 만드는데 프로그램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프로그램을 잘 진행하기 위해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은 제자화 사역의 목적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교회의 일보다 양육이 먼저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새신자나 오랫만에 교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최소한 6개월-1년간은 특정한 일을 맡기지 않고 양육에 최선을 다합니다. (찬양대, 수련회 프로그램 준비 등과 같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지요.)
(7) 이 모든 일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합니다.
(1) 방문과 적응단계(계단/선행은총): 방문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교회생활을 소개하고, 새신자가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준비가 되었을 때, 학습자로 받아들이는 환영의식을 거행한다. 기존의 교인들은 가르치기보다는 듣기에 힘쓰자! 특히, 모든 단계 속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기에 힘쓴다. 진심으로 환영하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편안히 느끼고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2) 학습/기본교육 단계 (현관/선행은총): 예배, 말씀, 기도와 삶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한 사역),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묵상을 통해 세례받을 준비를 한다. 가능하면, 소그룹 모임(학습자반)을 통해서 함께 만난다. 이 단계에서도 서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배와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돕는다. 그동안 많은 교회들이 이 단계를 소홀히 해왔으나, 최소한 6개월 (많게는 9개월)의 시간을 통해, 세례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례받을 준비가 되었을 때, 사순절 첫 주나 대림절 첫 주에 세례 후보자를 받아들이는 환영의식을 거행한다. (-> 현재, 저희 교회에서는 5주과정의 학습자반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정착이 되면, 6개월 이상의 과정으로 연장할 계획입니다.)
(3) 세례받는 단계 (집안으로 들어오는 문/칭의의 은총): 주로 사순절이나 강림절 기간에 집중적으로 세례 교육을 하며, 이 때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회개는 삶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돌아서는 것), 세례와 관련된 말씀과 함께 사도신경, 주기도문의 의미를 배우고 암송한다. 집중적인 기도, 금식, 예배등을 통해 준비된 후보는 주로 부활절이나 주님의 수세주일에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도 참예한다.
(4) 계속 성장하는 단계 (집안/성화의 은총): 세례는 성화의 삶의 시작이다. 교회생활과 선교에 동참하고, 계속 양육받으며, 일상 속에서 주어진 사역을 잘 감당한다.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이나 세례받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신앙과 삶의 본이 될 수 있도록 말하고 행동한다. 온 삶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교회와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하여 교인으로서의 의무를 잘 감당한다.
2. 기독교 입문과정 (새신자반과 학습자반)
(1) 저희 교회에 새로 오신 세례교인 가운데 등록교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새신자반(5주 과정)에 먼저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세례와 성만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성경은 어떤 책이고 어떻게 읽을 것인지, 감리교회가 어떤 곳인지 등 신앙생활의 기본을 배우면서, 교회의 분위기와 방향에 익숙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 과정을 마치신 분들은 입교의식을 통해 정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새신자반은 매주일 친교 후 사무실에서 모입니다. 세례받지 않으신 분은 학습자반 과정을 마치셔야 합니다.
(2) 세례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학습자반에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습자반 역시 5주 과정이며, 성경, 예배, 기도, 신앙과 삶, 세례의 의미와 실제 등을 배우게 됩니다. 주로 금요일 오후 4시에 만나고 있고, 개인사정에 따라 시간변동이 가능합니다.
(3) 새신자반과 학습자반을 포함한 모든 양육과 성장의 과정을 "기독교 입문과정"이라고 부릅니다. 처음 시작하는 단계뿐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의 과정 (혹은 제자화의 과정) 전체가 기독교 입문과정입니다. 늘 동행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서로의 온기로 인해 따뜻한 이 길을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3. 새신자 맞이 (아래는 기존 교인들을 위한 글)
기독교 입문과정을 돕기위해, 저희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가지고 새신자를 맞이하고, 기존의 회중들을 양육합니다.
(1) 연합 감리교회의 장정에 보면 "교회의 선교(사명)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개체교회는 제자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현장을 제공해 준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또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28:19)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한 몸 이룬 교회는 이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2) 모든 방문자를 따뜻하게 환영합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먼저 사랑하시고 받아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님 만나듯이 환영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하되,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편안히 느끼고 적응할 수 있도록 기다립니다. 다른 교회에 적을 둔 사람은 가능하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권고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지, 단순한 교세의 확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온 교회가 "제자를 만들고,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기본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존 교인들이 한 마음이 되어, 건강한 교회, 오고싶은 교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3) 새신자나 방문자를 맞이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초청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먼저 그 진리를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고,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기존의 회중들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의 살아있는 모델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와 삶의 일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교회생활과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배우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가야 합니다.
(4)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뒤를 똑같이 따르라고 말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향한 순례"의 걸음을 걷는 제자화의 과정 중에 있으며, 사람마다 신앙의 발달단계나 상황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조금 먼저 시작했을 뿐이고, 우리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기존의 회중들을 통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 함께 걷는 제자의 삶)
(5) 제자화는 교회조직이 아닌,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로를 위해, 교회를 위해,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6) 제자화 사역은 프로그램이나 일보다 사람이 우선되는 사역입니다. 제자를 만드는데 프로그램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 프로그램을 잘 진행하기 위해 사람을 실족케 하는 것은 제자화 사역의 목적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교회의 일보다 양육이 먼저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새신자나 오랫만에 교회에 나오신 분들에게 최소한 6개월-1년간은 특정한 일을 맡기지 않고 양육에 최선을 다합니다. (찬양대, 수련회 프로그램 준비 등과 같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지요.)
(7) 이 모든 일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합니다.
Sunday, September 2, 2007
다문화 예배와 찬양: 읽기 자료와 해설 (Collected by 선우 혁 목사님)
저희 교회는 예배시간마다 한국의 전통 가락으로 지어진 찬송을 두 곡씩 부르고 있습니다. 그 중 한 곡은 성찬식때 부르기 때문에, 미국에서 자란 어린 아이들도 매주 한 곡씩은 전통가락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성찬식 후 찬송가를 한 곡 더 부르는데, 이 때는 가능하면, 젊은세대들에게 친숙한 찬양곡을 부르려고 합니다. (연합감리교회 찬송가에 1.5세와 2세들에게 익숙한 찬양곡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예배 시간에 부르는 찬양곡이나, 대학.청년부, 중고등부 예배시 부르는 찬양곡은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여 선곡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성만찬의 회복, 다문화/토착화 예배, 세대간의 다리놓기 등 피할 수 없는 도전과 비전을 향해 조금씩 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지요.
아래의 <읽기자료>들은 '다문화 교회음악'(혹은 '교회음악의 한국화/토착화')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글들입니다.
<읽기 자료 1> 문성모, '찬송가 한국화(토착화)의 가능성과 그 범위'의 일부를 편집함
한국교회안에서 아직도 우리가락으로된 찬송가가 많지 못한 이유는 한국교회가 19세기 말의 문화적 상황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가 그대로 있으며 전통음악이나 악기가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비신앙적인 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는 아직도 '국악'을 기생음악, 술집음악, 유흥음악 정도로 생각하여 천시하고 비웃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불리워지는 찬송들이란 결국 미국찬송에 많이 쓰이던 콘트라팍타의 방법[민요에 종교적인 가사를 붙임]을 따라 만들어진것이 많으며 외국의 민요와 민간음악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어 찬송가화 한 것들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한국사람으로서 확신해야할 점은 본래 기독교와 상관 없었던 이런 외국의 음악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음악과 민간의 노래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적극적으로 우리민족의 교회노래로 활용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민요가 찬송이 되었고 그 찬송이 다시 민요화되어 널리 불리워졌던 사실은 오늘 우리가 우리의 전통민요가락에 신앙고백적인 가사를 붙여 찬송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에 용기를 주며 근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찬송가로 우리민요를 직접 사용하는 일은 죄악시해왔고 불경건스러운 것으로 취급해왔다. 그러면서도 남의 나라 민요로부터온 찬송가는 아무 거부감없이 부르며 은혜를 받았다. 스코틀랜드민요로부터 온 두 찬송가 "천부여 의지없어서"와 "하늘가는 밝은 길이"는 한국교회 부흥의 일등공신이었고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한 최고의 전도자였다. 한때 한국교회는 이들 찬송가가 민요출신이라 하여 업신여기고 새 곡으로 바꾸어보려고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러한 처사는 회중에게 가장 정직한 가락인 민요의 가치에 대해 무지하여 민요를 민(民)음악으로 보지 못하고 속(俗)음악으로 여겨 경시했던 결과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가사에는 민요 '올드 랑 사인'(Alud lang syne) 만한 곡이 없고, '하늘가는 밝은 길이'에는 '아니로리'(Annie Laurie) 이상의 가락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스코틀랜드의 민요찬송이 우리 기독교 회중들에게도 열렬한 애창곡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한국민요처럼 5음음계의 노래이며 단순한 리듬에 반복적이며 부르기 쉬운 가락을 가졌고 곡의 분위기도 한국민요와 흡사하여 민(民)의 한(恨)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영가'라는 이름의 미국의 민요찬송들이 한국교회 안팎에서 크게 애창되고 있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찬송가 한국화(토착화)의 가능성과 그 범위 (문성모) http://um-ak.co.kr/gyo/moon-tochak.htm
<읽기자료 2> 홍정수, '한국 전통음악의 교회수용 문제'의 일부를 편집함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교회음악이 보여주는 특징은 서양의 교회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찬송가도, 성가대 합창음악도,‘교회음악사’와 같은 책들도 번역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의 음악가들이 작곡한 교회음악은 비교적 눈에 뛰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가 100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자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청소년층을 중심하여 급속하게 보편화된 복음성가 운동이고, 하나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준으로 우리의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운동이다. 복음성가운동은 음향재생기, 라디오매체, 또는 기타반주로 연주되는 형태 등을 통해 별 논의도 없이 주로 70년대에 즉각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비해 한국전통음악으로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나 아직 교회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복음성가나 전통음악성가는 교회음악을 논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하지만 복음성가는 이미‘실질적’교회음악이 되어 있으나 전통음악성가는 아직도 그러한 단계에 와 있지 못하다. 다만 전통음악성가를 옹호하는 입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음악 성가를 주장하는 측에서 볼 때에 한국교회의 음악환경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는 확고한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국교회의 찬송가책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수준이다. 우리의 찬송가 수가 너무 적다. 여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나치게 전통음악적 배경을 갖지 않는 한국인의 찬송가도 많이 있는데 이것조차 거부되는 곳이 우리의 찬송가책이다. 과거 한국의 교회는 우리의 음악문화 전통과의 접촉을 어려워했다는 것을 우리의 찬송가책들이 확연하게 보여준다.... 교회에 놓여 있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 국악적 교회음악을 상당히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악기들이 할 수 있는 전통음악적 방법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많은 부분을 서양음악화 시킨다. 이 악기들의 이론적 바탕이 서양음악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도 있겠으나 전통음악이 모습 그대로 퍼지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음악 쪽에서는 이 악기들을 대체할만한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가야금과 같은 악기로 반주를 한다고 하면 그 소리가 회중들의 목소리에 눌려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조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로는 피리가 있으나 선율악기라는 점과 제한된 음역 때문에 대체악기로 생각해 보기는 어렵다. 소리가 큰 타악기만으로는 더 제한된 역할만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음악은‘듣는 음악’으로서 상당한 취약성을 갖고 있다. 특히 음악을‘하는 것’으로가 아니라‘듣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전통음악과의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음악‘하는 음악’에 속한다. 따라서 불러보거나 실제로 연주를 해 보아야 그 음악의 묘미에 접하게 된다. 그래서 들려주기보다는 해보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연주와 노래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보면 우선 들어보고 좋아야 실제로 하게 된다. 전통음악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면, 교회에서도 더 쉽게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중음악적 성격의 복음성가가 쉽게 교회 안에 뿌리내린 것을 보아서 짐작해 본 것이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해내려면 통용되는 음악의 보편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악이 일반 사회에서 대중화되면 될수록 교회음악으로의 전망도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교회가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양악을 퍼뜨렸듯이 전통음악의 보편화에도 앞장서는 편이 더 떳떳할 것으로 여겨진다. 국악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전통음악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대중음악 가수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대중가요 가수들에게 그들의 노래방법을 버리고 다른 식으로 노래하라고 말할 수 없다. 국악인들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더욱 확신 있는 찬양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한국전통음악의 교회수용 문제 (홍정수) http://um-ak.co.kr/gong/nonmun/hong-jeontong.htm
<읽기자료 3> 찬송가의 서문들 (초기선교사들도 언젠가는 한국의 가락으로, 한국인들이 만든 곡과 가사로 찬양할 것을 기대하였다!) * 최초의 개신교 찬송가인 <찬미가> 서문 요약 (1892, 감리교 감독교회 한국 선교부):
"번역에 의한 찬송가가 과연 (한국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결론은 한국교회내에서 찬송가 작사가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사가들을 배출하실 때까지의 빈공간을 메우는 선구자적인 길이요, 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 (참고) 감리교의 1892 찬미가는 곡없이 가사만 실린 찬송가였음. * 가사와 곡이 함께 실린 최초의 찬송가인 <찬양가> 서문 요약 (1894, H. G. Underwood): "이 찬송들은 대개 영어로 된 곡들의 번역이지만, 조금이나마 한국인 작사가들의 곡이 포함되었음을 기뻐한다. 앞으로 이들의 곡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초판 서문) "번역곡 대신에 한국인의 곡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들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재판 서문) * <찬성시> 서문 일부 (1895, 북장로교 선교부): "한국의 교회는 출발부터 예배를 위한 찬송가들이 필요했었다.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한 번역곡들은 처음부터 불완전(imperfect)하고, 임시방편의(merely tentative) 곡들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불러왔던 찬송가는 처음에 임시로 소개되었던 번역곡들이 대부분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가락으로, 한국인들이 만든 곡과 가사로 찬양할 것을 기대한 반면, 우리는 오히려 한국적인 것들을 소홀히 대해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01년에 연합감리교회와 미국장로교회가 함께 출간한 <찬송과 예배>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락(장고 등 전통악기를 위한 악보 포함)과 한국인 작사작곡가들의 곡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읽기자료 4> 이하는 찬양예배에 관한 글 김민호, '찬양을 생각하기 전에'--일부 요약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문화를 거의 종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토양에서는 교회문화에서조차 별차이 없이 미국의 교회문화, 특히 찬양문화를 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적인 관행은 우리의 체질과 생활 양식을 무시하고 또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배려하지 않고 외국의 찬양문화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교회와 찬양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은 외국의 창작품들을 번역하는 것으로 문화 소프트를 손쉽게 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유익한 것들을 얻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오는 문화적 이질성들이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삶의 공간을 이질적 문화와 감성들의 기독교 문화가 차지하면서 문화적 종속을 만들어가고 있다. 찬양 문화가 교회를 위하여 많은 기여를 했고, 우리 교회가 문화적 부요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할 부분도 있지만, 문화 주체자들이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http://www.seejesus.or.kr/1-WEB-Seminar/changyang1.2.htm --> 인터넷상에 올라왔던 글인데,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네요...) * 흔히 '경배와 찬양'이란 이름으로 번역되는 찬양예배는 전통적인 예배에 익숙하지 않거나, 잘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의 젊은세대들을 위한 대안예배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찬양예배를 선호하고 있으며, 찬양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젊은이들 또한 많습니다. 특히, 찬양예배를 통하여 회중이 예배의 능동적 참여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회중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예배갱신운동(liturgical movement)과 만날 수 있는 여지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문화 예배와 찬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만한 글들을 계속 읽어봅니다.
<읽기자료 5> 황병구 => 황병구님의 <예배인도자들을 권력독점의 한계에서 구출하기>라는 글에서 지적된, 찬양예배의 공헌과 문제점들 가운데 제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들을 요약해서 옮겨봅니다.
-공헌- (1) 찬양예배를 통해 회중의 참여가 확대되었다. (2) 온 몸으로 찬양하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곡에 따른 분별이 있어야 하고, 몸짓이 의무감이나 습관에 의한 부산물이라면 자제해야 한다. -문제점- (1) 인도자들에 의해서 선곡이 독점되고 있다. 선곡의 유일한 기준이 회중의 반응이라는 것도 문제이다. (2) 획일화된 연주와 진행 스타일: 새로운 곡의 출처(모임이나 음반)에서 연주되고 진행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고, 악기의 편성도 비슷하다. 대부분이 빈야드나 호산나 인티그리티의 서구적 연주방식이다. 공동체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 -> 사람마다 공동체마다 하나님과 맺는 관계와 표현이 다를 수 있는데, 현재의 획일적인 찬양예배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개성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3) 근거불명의 멘트와 곡해석및 적용: 곡과 곡 사이에, 아니면 후렴으로 넘어가는 긴 쉼박에 멘트를 해야 찬양예배인줄 안다. 옳지않은 곡해석과 적용도 많다. (4) 찬양인도자(섬김이?, 찬양지기?)들의 자질문제: 경험과 예배에 대한 기본 교육이 더 필요하다. 기술만 가지고 할 수 없다. 본질이 아닌 기술이나 방법만 배우는 경우가 많으며, 잘못하면 전문가나 매니아만 길러낼 수 있다. (5) 수동적 수용: "넘 좋아요" "함 들어봐요" 등의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찬양곡의 모니터/피드백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현재는 적당히 은혜스러운 단어의 조합이나 귀를 즐겁게 해줄 만한 리듬과 화성을 갖추기만 하면 창작과 연주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6) 찬양(+신학)의 편중: 올네이션즈를 통해 소개된 외국곡들과 예수전도단및 굵직굵직한 개인사역자 중심으로 찬양곡이 불리워지고 있다. *** 회중의 스타가 되거나, 그 스타의 팬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이룬 예배 공동체(=교회)로서 찬양하자!!! 많은 물소리 찬양예배 관련 글 모음 http://www.thesounds.org/persp/read/list.asp
<읽기자료 6> Andy Langford, Transitions in Worship
-공헌과 가능성-
(1) 기존의 찬송가가 풍부한(rich and complex) 음악과 성경에 대한 시적인 표현을 통해 신앙과 말씀을 전달하고자 했다면, 현대의 찬양곡들은 성경구절의 반복과 기억하기 쉬운 음악을 통해 찬양을 부르는 이들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흥미있는 일은 예전중심의 회중들이 현대의 찬양곡들을 사용함에 따라, 점차로 성만찬, 세례, 교회력을 위한 곡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찬양예배에 사용되는 곡과 가사가 20년후에는 훨씬 더 발전될 것이다.
(2) 비디오 프로젝션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회중의 눈과 목소리가 위를 향하게 되었고, 양손이 자유롭게 되었다. 즉, 회중의 참여가 높아졌다.
-문제점-
(1) 비록 가사와 곡이 마음에 와닿고, 오래 남는다고 하더라도, 일평생을 통해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통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2)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 아직도 남성편향적인 언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3) 공동체보다는 주로 개인(I, my, me)의 체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4) 찬양예배가 따뜻하거나, 감동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simplistic and superficial)하고, 그 안에 내용이 별로 없다. 현대의 문화적 흐름을 너무 쉽게 쪼ㅈ아간다.
(5) 즉각적인 체험과 반응을 강조하다보니, 성례전이나 통전적인 말씀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는다. 역시 내용의 문제...
(6) 찬양리더를 추종하는 그룹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문제는 찬양예배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달란트를 함께 나누고, 사용하는 팀사역이 필요하다. (-> 많은 찬양예배 인도자들은 팀과 함께 비전을 나누면서, 함께 일하고자 한다.)
<읽기자료 7> 참고: Handt Hanson, Mission-Driven Worship: 선곡에 관하여...
(1) 가사를 잘 생각해 본다. 신학적으로 건전한가? 우리 교회의 비전과 방향에 잘 어울리는가? 등등. 예를 들어, 하나님과 성령에 대해 남성편향적으로 묘사한 곡들은 선곡에서 제외시키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군사적이 이미지, 성/인종 차별적인 (혹은 무감각한) 언어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사의 선택에 신중하라!
(2) 가사의 이미지가 예배전체와 연결되고, 회중들의 삶과 연결되며, 그 속에서 변화(impact)를 가져와야 한다.
(3) 부르기 쉽고, 배우기 쉬우며, 오래 기억되는 곡으로 선곡한다. 한곡의 길이가 3분이상을 넘지 않게 한다.
(4) 다양성/공동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이지만, 그리스도의 한몸되어 보냄을 받는다 (나에서 우리로 옮아가는 것). God-focused, people-related.
<읽기자료 8> C. Michael Hawn, Gather into One Praying and Singing Globally: 다문화 예배와 찬양에 관하여.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다는 것이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The Unity as one body of Christ does not mean uniformity... 영어표현 요약함)
(2) 하나의 문화 속에서 나온 형태로만 찬양하지 않고, 여러 문화 속에서 나온 다양한 찬양을 함께 부를 때,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있다.
(3) 서구교회가 특정한 찬송의 전통을 회중찬양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서구교회는] '서구교회대 나머지 교회'라는 이원론의 위험에 빠지고 만다.
(4) 앞으로 우리는 예배와 찬양의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c dichotomy: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원론)에서 모든 문화가 다함께 존중되는 다문화 예배와 찬양으로 옮겨가야 한다. --> the diverse ministries of the Holy Spirit!
(5)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모든 문화를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와 상징들을 공유할 수 있고,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
Diversity of Songs, Unity of Spirit! -마이클 헌(Michael Hawn)이 이해하는 예전적인 다원성(Liturgical Plurality)-
(1) 예전적인 다원성이 단순한 문화여행(ethno-tourism)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문화에 대한 피상적인 편견(streotyping)을 갖게 만든다.
(2) 예전적인 다원성은 개인의 신앙전통을 부인하지 않는다. 서로의 신앙전통을 존중하고, 비판하고, 배우는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3) 예전적인 다원성은 다양한 형태를 하나의 보편적인 형태로 종합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그 안에 참여하고자 한다.
(4) 예전적인 다원성은 '반문화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이는 규범적인 문화를 강요하려는 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빠른 속도로 퍼져가는 오락산업(entertainment industry)등 북미 대중문화의 표현들이 예배 속에서 부적절하게 사용될 때,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회중의 요구와 문화를 정신없이 쪼ㅈ아가다 보면, 그 문화의 포로가 되고만다. 반문화적인 신앙의 표현으로서의 예전적 다원성은, 하나의 문화적 관점을 우상화하는 포로상태(cultural captivity)를 거부한다.
(5) 예전적 다원성은 모든 문화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경축(celebrate)한다. 수많은 문화들은 말씀이 '살'이 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기독교 예전의 전달을 위한 통로가 된다. (특정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보편적 진리의 인식이 깊어진다.)
(6) 예전적 다원성은 오랫동안 시야에서 가려졌던 이들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 즉, 예전적인 다양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한다.
(7) 마지막으로, 예전적인 다원성은 종말론적인 희망을 갖는다. 예전적인 다원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미국의 규범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가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예전적인 다원성은 전통이냐 현대냐 하는 이원론적인 논쟁에 휘말리기 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존중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초월하여 세상을 위해, 세상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 "다문화/한국화 예배는 '말씀'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이 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와 특정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보편적 진리의 인식이 깊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코리안 아메리칸 크리스챤'이라는 자존감(self-respect)을 갖게되고, 자신은 물론, 다른 인종과 문화를 존중하는 훈련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야말로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 JX, 웨슬리) 한국적인 예배를 통해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이 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의 회복된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성령충만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대예배 시간에 부르는 찬양곡이나, 대학.청년부, 중고등부 예배시 부르는 찬양곡은 문화적 다양성을 고려하여 선곡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성만찬의 회복, 다문화/토착화 예배, 세대간의 다리놓기 등 피할 수 없는 도전과 비전을 향해 조금씩 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지요.
아래의 <읽기자료>들은 '다문화 교회음악'(혹은 '교회음악의 한국화/토착화')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글들입니다.
<읽기 자료 1> 문성모, '찬송가 한국화(토착화)의 가능성과 그 범위'의 일부를 편집함
한국교회안에서 아직도 우리가락으로된 찬송가가 많지 못한 이유는 한국교회가 19세기 말의 문화적 상황을 거의 그대로 답습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가 그대로 있으며 전통음악이나 악기가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크게 비신앙적인 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안에서는 아직도 '국악'을 기생음악, 술집음악, 유흥음악 정도로 생각하여 천시하고 비웃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불리워지는 찬송들이란 결국 미국찬송에 많이 쓰이던 콘트라팍타의 방법[민요에 종교적인 가사를 붙임]을 따라 만들어진것이 많으며 외국의 민요와 민간음악이 질적 변화를 일으키어 찬송가화 한 것들이 상당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한국사람으로서 확신해야할 점은 본래 기독교와 상관 없었던 이런 외국의 음악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통음악과 민간의 노래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적극적으로 우리민족의 교회노래로 활용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민요가 찬송이 되었고 그 찬송이 다시 민요화되어 널리 불리워졌던 사실은 오늘 우리가 우리의 전통민요가락에 신앙고백적인 가사를 붙여 찬송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에 용기를 주며 근거를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찬송가로 우리민요를 직접 사용하는 일은 죄악시해왔고 불경건스러운 것으로 취급해왔다. 그러면서도 남의 나라 민요로부터온 찬송가는 아무 거부감없이 부르며 은혜를 받았다. 스코틀랜드민요로부터 온 두 찬송가 "천부여 의지없어서"와 "하늘가는 밝은 길이"는 한국교회 부흥의 일등공신이었고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한 최고의 전도자였다. 한때 한국교회는 이들 찬송가가 민요출신이라 하여 업신여기고 새 곡으로 바꾸어보려고 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이러한 처사는 회중에게 가장 정직한 가락인 민요의 가치에 대해 무지하여 민요를 민(民)음악으로 보지 못하고 속(俗)음악으로 여겨 경시했던 결과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의 가사에는 민요 '올드 랑 사인'(Alud lang syne) 만한 곡이 없고, '하늘가는 밝은 길이'에는 '아니로리'(Annie Laurie) 이상의 가락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스코틀랜드의 민요찬송이 우리 기독교 회중들에게도 열렬한 애창곡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한국민요처럼 5음음계의 노래이며 단순한 리듬에 반복적이며 부르기 쉬운 가락을 가졌고 곡의 분위기도 한국민요와 흡사하여 민(民)의 한(恨)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흑인영가'라는 이름의 미국의 민요찬송들이 한국교회 안팎에서 크게 애창되고 있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찬송가 한국화(토착화)의 가능성과 그 범위 (문성모) http://um-ak.co.kr/gyo/moon-tochak.htm
<읽기자료 2> 홍정수, '한국 전통음악의 교회수용 문제'의 일부를 편집함
오늘날까지의 한국의 교회음악이 보여주는 특징은 서양의 교회음악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찬송가도, 성가대 합창음악도,‘교회음악사’와 같은 책들도 번역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의 음악가들이 작곡한 교회음악은 비교적 눈에 뛰지 않는 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역사가 100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움직임이 자라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나는 청소년층을 중심하여 급속하게 보편화된 복음성가 운동이고, 하나는 한국의 전통음악을 기준으로 우리의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운동이다. 복음성가운동은 음향재생기, 라디오매체, 또는 기타반주로 연주되는 형태 등을 통해 별 논의도 없이 주로 70년대에 즉각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 비해 한국전통음악으로 교회음악을 세우자는 논의는 지속적으로 있어 왔으나 아직 교회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복음성가나 전통음악성가는 교회음악을 논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다. 하지만 복음성가는 이미‘실질적’교회음악이 되어 있으나 전통음악성가는 아직도 그러한 단계에 와 있지 못하다. 다만 전통음악성가를 옹호하는 입장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통음악 성가를 주장하는 측에서 볼 때에 한국교회의 음악환경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는 확고한 민족주의자가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국교회의 찬송가책은 대단히 수치스러운 수준이다. 우리의 찬송가 수가 너무 적다. 여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지나치게 전통음악적 배경을 갖지 않는 한국인의 찬송가도 많이 있는데 이것조차 거부되는 곳이 우리의 찬송가책이다. 과거 한국의 교회는 우리의 음악문화 전통과의 접촉을 어려워했다는 것을 우리의 찬송가책들이 확연하게 보여준다.... 교회에 놓여 있는 오르간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는 국악적 교회음악을 상당히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악기들이 할 수 있는 전통음악적 방법은 극히 제한되어 있고 많은 부분을 서양음악화 시킨다. 이 악기들의 이론적 바탕이 서양음악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수도 있겠으나 전통음악이 모습 그대로 퍼지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통음악 쪽에서는 이 악기들을 대체할만한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 가야금과 같은 악기로 반주를 한다고 하면 그 소리가 회중들의 목소리에 눌려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조금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로는 피리가 있으나 선율악기라는 점과 제한된 음역 때문에 대체악기로 생각해 보기는 어렵다. 소리가 큰 타악기만으로는 더 제한된 역할만을 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음악은‘듣는 음악’으로서 상당한 취약성을 갖고 있다. 특히 음악을‘하는 것’으로가 아니라‘듣는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점이 전통음악과의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 우리의 전통음악‘하는 음악’에 속한다. 따라서 불러보거나 실제로 연주를 해 보아야 그 음악의 묘미에 접하게 된다. 그래서 들려주기보다는 해보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연주와 노래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보면 우선 들어보고 좋아야 실제로 하게 된다. 전통음악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되면, 교회에서도 더 쉽게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중음악적 성격의 복음성가가 쉽게 교회 안에 뿌리내린 것을 보아서 짐작해 본 것이다.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해내려면 통용되는 음악의 보편성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악이 일반 사회에서 대중화되면 될수록 교회음악으로의 전망도 더 밝아질 것으로 기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교회가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양악을 퍼뜨렸듯이 전통음악의 보편화에도 앞장서는 편이 더 떳떳할 것으로 여겨진다. 국악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전통음악이 교회에 들어오게 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대중음악 가수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복음성가를 많이 부르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대중가요 가수들에게 그들의 노래방법을 버리고 다른 식으로 노래하라고 말할 수 없다. 국악인들도 자신들의 방법으로 더욱 확신 있는 찬양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한국전통음악의 교회수용 문제 (홍정수) http://um-ak.co.kr/gong/nonmun/hong-jeontong.htm
<읽기자료 3> 찬송가의 서문들 (초기선교사들도 언젠가는 한국의 가락으로, 한국인들이 만든 곡과 가사로 찬양할 것을 기대하였다!) * 최초의 개신교 찬송가인 <찬미가> 서문 요약 (1892, 감리교 감독교회 한국 선교부):
"번역에 의한 찬송가가 과연 (한국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잘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결론은 한국교회내에서 찬송가 작사가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사가들을 배출하실 때까지의 빈공간을 메우는 선구자적인 길이요, 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 (참고) 감리교의 1892 찬미가는 곡없이 가사만 실린 찬송가였음. * 가사와 곡이 함께 실린 최초의 찬송가인 <찬양가> 서문 요약 (1894, H. G. Underwood): "이 찬송들은 대개 영어로 된 곡들의 번역이지만, 조금이나마 한국인 작사가들의 곡이 포함되었음을 기뻐한다. 앞으로 이들의 곡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초판 서문) "번역곡 대신에 한국인의 곡들이 많아지면 질수록, 그들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재판 서문) * <찬성시> 서문 일부 (1895, 북장로교 선교부): "한국의 교회는 출발부터 예배를 위한 찬송가들이 필요했었다. 이 필요를 채우기 위한 번역곡들은 처음부터 불완전(imperfect)하고, 임시방편의(merely tentative) 곡들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불러왔던 찬송가는 처음에 임시로 소개되었던 번역곡들이 대부분입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의 가락으로, 한국인들이 만든 곡과 가사로 찬양할 것을 기대한 반면, 우리는 오히려 한국적인 것들을 소홀히 대해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01년에 연합감리교회와 미국장로교회가 함께 출간한 <찬송과 예배>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락(장고 등 전통악기를 위한 악보 포함)과 한국인 작사작곡가들의 곡이 다수 포함되었습니다. <읽기자료 4> 이하는 찬양예배에 관한 글 김민호, '찬양을 생각하기 전에'--일부 요약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문화를 거의 종속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한국토양에서는 교회문화에서조차 별차이 없이 미국의 교회문화, 특히 찬양문화를 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습관적인 관행은 우리의 체질과 생활 양식을 무시하고 또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배려하지 않고 외국의 찬양문화를 따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교회와 찬양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한국은 외국의 창작품들을 번역하는 것으로 문화 소프트를 손쉽게 생산해내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유익한 것들을 얻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와 다른 삶의 자리에서 오는 문화적 이질성들이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한 삶의 공간을 이질적 문화와 감성들의 기독교 문화가 차지하면서 문화적 종속을 만들어가고 있다. 찬양 문화가 교회를 위하여 많은 기여를 했고, 우리 교회가 문화적 부요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사할 부분도 있지만, 문화 주체자들이 기독교 문화를 이끌어 가는 과정에서 생각해 볼 점이 많다.
(http://www.seejesus.or.kr/1-WEB-Seminar/changyang1.2.htm --> 인터넷상에 올라왔던 글인데,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네요...) * 흔히 '경배와 찬양'이란 이름으로 번역되는 찬양예배는 전통적인 예배에 익숙하지 않거나, 잘 적응하지 못하는 미국의 젊은세대들을 위한 대안예배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중고등부 학생들이나 청년들도 찬양예배를 선호하고 있으며, 찬양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속에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젊은이들 또한 많습니다. 특히, 찬양예배를 통하여 회중이 예배의 능동적 참여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회중의 참여를 중요시하는 예배갱신운동(liturgical movement)과 만날 수 있는 여지도 많은 것 같습니다. 다문화 예배와 찬양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될만한 글들을 계속 읽어봅니다.
<읽기자료 5> 황병구 => 황병구님의 <예배인도자들을 권력독점의 한계에서 구출하기>라는 글에서 지적된, 찬양예배의 공헌과 문제점들 가운데 제가 인상적으로 읽었던 부분들을 요약해서 옮겨봅니다.
-공헌- (1) 찬양예배를 통해 회중의 참여가 확대되었다. (2) 온 몸으로 찬양하는 법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나, 곡에 따른 분별이 있어야 하고, 몸짓이 의무감이나 습관에 의한 부산물이라면 자제해야 한다. -문제점- (1) 인도자들에 의해서 선곡이 독점되고 있다. 선곡의 유일한 기준이 회중의 반응이라는 것도 문제이다. (2) 획일화된 연주와 진행 스타일: 새로운 곡의 출처(모임이나 음반)에서 연주되고 진행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고, 악기의 편성도 비슷하다. 대부분이 빈야드나 호산나 인티그리티의 서구적 연주방식이다. 공동체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 -> 사람마다 공동체마다 하나님과 맺는 관계와 표현이 다를 수 있는데, 현재의 획일적인 찬양예배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개성이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3) 근거불명의 멘트와 곡해석및 적용: 곡과 곡 사이에, 아니면 후렴으로 넘어가는 긴 쉼박에 멘트를 해야 찬양예배인줄 안다. 옳지않은 곡해석과 적용도 많다. (4) 찬양인도자(섬김이?, 찬양지기?)들의 자질문제: 경험과 예배에 대한 기본 교육이 더 필요하다. 기술만 가지고 할 수 없다. 본질이 아닌 기술이나 방법만 배우는 경우가 많으며, 잘못하면 전문가나 매니아만 길러낼 수 있다. (5) 수동적 수용: "넘 좋아요" "함 들어봐요" 등의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 찬양곡의 모니터/피드백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용자가 되어야 한다. 현재는 적당히 은혜스러운 단어의 조합이나 귀를 즐겁게 해줄 만한 리듬과 화성을 갖추기만 하면 창작과 연주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6) 찬양(+신학)의 편중: 올네이션즈를 통해 소개된 외국곡들과 예수전도단및 굵직굵직한 개인사역자 중심으로 찬양곡이 불리워지고 있다. *** 회중의 스타가 되거나, 그 스타의 팬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이룬 예배 공동체(=교회)로서 찬양하자!!! 많은 물소리 찬양예배 관련 글 모음 http://www.thesounds.org/persp/read/list.asp
<읽기자료 6> Andy Langford, Transitions in Worship
-공헌과 가능성-
(1) 기존의 찬송가가 풍부한(rich and complex) 음악과 성경에 대한 시적인 표현을 통해 신앙과 말씀을 전달하고자 했다면, 현대의 찬양곡들은 성경구절의 반복과 기억하기 쉬운 음악을 통해 찬양을 부르는 이들을 무아지경으로 빠져들게 한다. 흥미있는 일은 예전중심의 회중들이 현대의 찬양곡들을 사용함에 따라, 점차로 성만찬, 세례, 교회력을 위한 곡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찬양예배에 사용되는 곡과 가사가 20년후에는 훨씬 더 발전될 것이다.
(2) 비디오 프로젝션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회중의 눈과 목소리가 위를 향하게 되었고, 양손이 자유롭게 되었다. 즉, 회중의 참여가 높아졌다.
-문제점-
(1) 비록 가사와 곡이 마음에 와닿고, 오래 남는다고 하더라도, 일평생을 통해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통전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2)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 아직도 남성편향적인 언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3) 공동체보다는 주로 개인(I, my, me)의 체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4) 찬양예배가 따뜻하거나, 감동적인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단순(simplistic and superficial)하고, 그 안에 내용이 별로 없다. 현대의 문화적 흐름을 너무 쉽게 쪼ㅈ아간다.
(5) 즉각적인 체험과 반응을 강조하다보니, 성례전이나 통전적인 말씀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질 않는다. 역시 내용의 문제...
(6) 찬양리더를 추종하는 그룹으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문제는 찬양예배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달란트를 함께 나누고, 사용하는 팀사역이 필요하다. (-> 많은 찬양예배 인도자들은 팀과 함께 비전을 나누면서, 함께 일하고자 한다.)
<읽기자료 7> 참고: Handt Hanson, Mission-Driven Worship: 선곡에 관하여...
(1) 가사를 잘 생각해 본다. 신학적으로 건전한가? 우리 교회의 비전과 방향에 잘 어울리는가? 등등. 예를 들어, 하나님과 성령에 대해 남성편향적으로 묘사한 곡들은 선곡에서 제외시키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군사적이 이미지, 성/인종 차별적인 (혹은 무감각한) 언어등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사의 선택에 신중하라!
(2) 가사의 이미지가 예배전체와 연결되고, 회중들의 삶과 연결되며, 그 속에서 변화(impact)를 가져와야 한다.
(3) 부르기 쉽고, 배우기 쉬우며, 오래 기억되는 곡으로 선곡한다. 한곡의 길이가 3분이상을 넘지 않게 한다.
(4) 다양성/공동체성을 추구해야 한다. 서로 다른 개인들이 모이지만, 그리스도의 한몸되어 보냄을 받는다 (나에서 우리로 옮아가는 것). God-focused, people-related.
<읽기자료 8> C. Michael Hawn, Gather into One Praying and Singing Globally: 다문화 예배와 찬양에 관하여.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다는 것이 동일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The Unity as one body of Christ does not mean uniformity... 영어표현 요약함)
(2) 하나의 문화 속에서 나온 형태로만 찬양하지 않고, 여러 문화 속에서 나온 다양한 찬양을 함께 부를 때,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 수있다.
(3) 서구교회가 특정한 찬송의 전통을 회중찬양의 중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서구교회는] '서구교회대 나머지 교회'라는 이원론의 위험에 빠지고 만다.
(4) 앞으로 우리는 예배와 찬양의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c dichotomy: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원론)에서 모든 문화가 다함께 존중되는 다문화 예배와 찬양으로 옮겨가야 한다. --> the diverse ministries of the Holy Spirit!
(5)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모든 문화를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와 상징들을 공유할 수 있고, 세상의 변혁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
Diversity of Songs, Unity of Spirit! -마이클 헌(Michael Hawn)이 이해하는 예전적인 다원성(Liturgical Plurality)-
(1) 예전적인 다원성이 단순한 문화여행(ethno-tourism)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문화에 대한 피상적인 편견(streotyping)을 갖게 만든다.
(2) 예전적인 다원성은 개인의 신앙전통을 부인하지 않는다. 서로의 신앙전통을 존중하고, 비판하고, 배우는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3) 예전적인 다원성은 다양한 형태를 하나의 보편적인 형태로 종합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고, 그 안에 참여하고자 한다.
(4) 예전적인 다원성은 '반문화적인' 신앙의 표현이다. 이는 규범적인 문화를 강요하려는 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빠른 속도로 퍼져가는 오락산업(entertainment industry)등 북미 대중문화의 표현들이 예배 속에서 부적절하게 사용될 때, 그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회중의 요구와 문화를 정신없이 쪼ㅈ아가다 보면, 그 문화의 포로가 되고만다. 반문화적인 신앙의 표현으로서의 예전적 다원성은, 하나의 문화적 관점을 우상화하는 포로상태(cultural captivity)를 거부한다.
(5) 예전적 다원성은 모든 문화 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경축(celebrate)한다. 수많은 문화들은 말씀이 '살'이 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와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온 기독교 예전의 전달을 위한 통로가 된다. (특정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보편적 진리의 인식이 깊어진다.)
(6) 예전적 다원성은 오랫동안 시야에서 가려졌던 이들에 대해 인식하게 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 즉, 예전적인 다양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한다.
(7) 마지막으로, 예전적인 다원성은 종말론적인 희망을 갖는다. 예전적인 다원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미국의 규범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많은 사람들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교회가 궁극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예전적인 다원성은 전통이냐 현대냐 하는 이원론적인 논쟁에 휘말리기 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존중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문화를 초월하여 세상을 위해, 세상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 "다문화/한국화 예배는 '말씀'이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이 되셨다는 복음의 메시지와 특정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보편적 진리의 인식이 깊어진다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코리안 아메리칸 크리스챤'이라는 자존감(self-respect)을 갖게되고, 자신은 물론, 다른 인종과 문화를 존중하는 훈련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다른 피조물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야말로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 JX, 웨슬리) 한국적인 예배를 통해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이 될 때, 하나님과 나 사이의 회복된 관계가 이웃과의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성령충만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Friday, July 20, 2007
Prayers of the People
Prayers of the People [15]
P or A: For the whole people of God in Christ Jesus, despite gender, economic status, or cultural background, we offer these petitions praying in Jesus' name and responding together, "Amen."
A: For those who are oppressed and exploited by violent governments and unjust economic systems, that they might be liberated from these chains.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are slaves to greed and the pursuit of wealth, that they might instead seek the Lord.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suffer for the sake of the gospel, that they might find inner peace and a heavenly reward for their participation in Christ crucified.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in ill health, that they might be healed. We remember __________.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are consumed by work, that they might learn to sit at the feet of the Lord in quiet contemplation. In Jesus' name we pray. Amen.
P: We pray together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living by his grace and trusting in his abundant mercy. Amen. http://www.worship.on.ca/text/inter_c.txt
P or A: For the whole people of God in Christ Jesus, despite gender, economic status, or cultural background, we offer these petitions praying in Jesus' name and responding together, "Amen."
A: For those who are oppressed and exploited by violent governments and unjust economic systems, that they might be liberated from these chains.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are slaves to greed and the pursuit of wealth, that they might instead seek the Lord.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suffer for the sake of the gospel, that they might find inner peace and a heavenly reward for their participation in Christ crucified.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in ill health, that they might be healed. We remember __________. In Jesus' name we pray. Amen.
A: For those who are consumed by work, that they might learn to sit at the feet of the Lord in quiet contemplation. In Jesus' name we pray. Amen.
P: We pray together in the name of our Lord Jesus Christ, living by his grace and trusting in his abundant mercy. Amen. http://www.worship.on.ca/text/inter_c.txt
Thursday, June 14, 2007
세례시 안수의 의미
It is clear from the writings of Tertullian and The Apostolic Tradition that the catechumenate with its exorcisms, renunciations, scrutinites, and laying on of hands involved a process of separating would-be Christians from the concrete manifestations of the demonic in daily life. Alistair Stewart-Sykes sees in this fact the meaning of the postbaptismal laying on of hands, usually by the bishop. Baptism my be construed as liberation from slavery to sin, death, and the power of the devil. The laying on of hands is a symbol of this freedom and new relationship.
In Roman society the ritual gesture of manumission was used before a magistrate such as a proconsul to effect officially the freeing of a slave from bondage to the master. But not all ties with the master were severed, and this affects the interpretation of the postbaptismal laying on of hands The freed slave was now a client of the former master, who became his or her patron. In the client-patron relationship, the freed slave could expect to receive economic support from the patron, and the patron could expect to receive social or political support from the client. Soclose was the client-patron relationship that the client was regarded as a part of the patron's extended family and could even be buried in the patron's burial plot; the client, for his part, was expected to render obsequium (the giving of servile flattery) to the patron.
So pervasive was this social relationship in Roman or romanized societies, such as that of North Africa, that it is impossible to imagine that manumission was practiced in Christian initiation without this implying some form of patron-client relationship...
(Frank C. Senn. The People's Work: A Social History of the Litur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6, p. 33)
In Roman society the ritual gesture of manumission was used before a magistrate such as a proconsul to effect officially the freeing of a slave from bondage to the master. But not all ties with the master were severed, and this affects the interpretation of the postbaptismal laying on of hands The freed slave was now a client of the former master, who became his or her patron. In the client-patron relationship, the freed slave could expect to receive economic support from the patron, and the patron could expect to receive social or political support from the client. Soclose was the client-patron relationship that the client was regarded as a part of the patron's extended family and could even be buried in the patron's burial plot; the client, for his part, was expected to render obsequium (the giving of servile flattery) to the patron.
So pervasive was this social relationship in Roman or romanized societies, such as that of North Africa, that it is impossible to imagine that manumission was practiced in Christian initiation without this implying some form of patron-client relationship...
(Frank C. Senn. The People's Work: A Social History of the Litur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6, p. 33)
Saturday, May 19, 2007
A Lamentation: I Couldn't Hear Nobody Pray!
A Lamentation: I Couldn't Hear Nobody Pray!
A 21st Century Africana Liturgy Resource
by The Rev. Maxine Allen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heard the sounds of bullets…
I heard the sounds of sirens…
I heard the click and flash of cameras and cell phones…
I heard the pounding of boots on the pavement…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heard the sound of moaning…
I heard the beating of fists…
I heard the whir of the helicopter…
But, I couldn't hear nobody pray.
I hear the peck, peck, peck of computer keys…
I hear the television in the background…
I hear the announcer give the body count…
I hear the young man crying…
But, I couldn't hear nobody pray.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couldn't hear nobody pray.
Way down yonder by myself, And I couldn't hear nobody p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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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Rev. Maxine Allen is Minister of Missions and Ethnic Ministries for the Arkansas Conferenc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A 21st Century Africana Liturgy Resource
by The Rev. Maxine Allen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heard the sounds of bullets…
I heard the sounds of sirens…
I heard the click and flash of cameras and cell phones…
I heard the pounding of boots on the pavement…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heard the sound of moaning…
I heard the beating of fists…
I heard the whir of the helicopter…
But, I couldn't hear nobody pray.
I hear the peck, peck, peck of computer keys…
I hear the television in the background…
I hear the announcer give the body count…
I hear the young man crying…
But, I couldn't hear nobody pray.
I couldn't hear nobody pray, Lord!
I couldn't hear nobody pray.
Way down yonder by myself, And I couldn't hear nobody pray!
• • • •
About the Author: Rev. Maxine Allen is Minister of Missions and Ethnic Ministries for the Arkansas Conferenc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Wednesday, March 14, 2007
사순절 재의 수요일 예배 순서(연합감리교회)
재의 수요일 예배순서
환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목사님과도 함께 하기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송축합시다."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혹은 "영원한 자비의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여는 기도
찬송
성경봉독 (요엘서 2:1-2, 12:17)
[시편] 51편 1-17을 여기서 읽거나, 나중에 회개의 기도를 대신한다
성경봉독 2 (고린도후서 5:20후반-6:10)
찬송
복음서 봉독 (마태복음 6:1-6, 16-21)
설교/말씀묵상
사순절 순례의 길로 초대함
(사순절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한 후, 회개, 절제, 기도, 금식, 자기부정, 말씀묵상 등을 실천하도록 초청한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고백하고, 회개의 삶을 시작하는 표시로 우리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앞에 무릎꿇고/머리숙여 기도합시다"하며 잠시 조용히 기도한다.)
재에 대한 감사의 기도
("흙으로 저희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이 재를 통해 우리의 유한성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오직 당신의 은혜로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재를 바르는 의식
(엄지에 묻힌 재로 각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며,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한다. 회중들은 조용히 기도하거나 찬송을 부른다.)
죄의 고백과 용서
(시편 51편 1-17을 공동기도문으로 쓸 수 있다.)
평화의 인사
(서로 화해와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봉헌
감사의 기도
주의 기도
찬송
축도와 파송
(축도 후, 회중들이 조용히 예배당 밖으로 나간다.)
환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목사님과도 함께 하기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송축합시다."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혹은 "영원한 자비의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여는 기도
찬송
성경봉독 (요엘서 2:1-2, 12:17)
[시편] 51편 1-17을 여기서 읽거나, 나중에 회개의 기도를 대신한다
성경봉독 2 (고린도후서 5:20후반-6:10)
찬송
복음서 봉독 (마태복음 6:1-6, 16-21)
설교/말씀묵상
사순절 순례의 길로 초대함
(사순절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한 후, 회개, 절제, 기도, 금식, 자기부정, 말씀묵상 등을 실천하도록 초청한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고백하고, 회개의 삶을 시작하는 표시로 우리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앞에 무릎꿇고/머리숙여 기도합시다"하며 잠시 조용히 기도한다.)
재에 대한 감사의 기도
("흙으로 저희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이 재를 통해 우리의 유한성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오직 당신의 은혜로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재를 바르는 의식
(엄지에 묻힌 재로 각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며,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한다. 회중들은 조용히 기도하거나 찬송을 부른다.)
죄의 고백과 용서
(시편 51편 1-17을 공동기도문으로 쓸 수 있다.)
평화의 인사
(서로 화해와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봉헌
감사의 기도
주의 기도
찬송
축도와 파송
(축도 후, 회중들이 조용히 예배당 밖으로 나간다.)
Friday, March 9, 2007
새 번역 주기도문/사도신경
새 주기도문·사도신경 채택 (예장통합/아이굿뉴스) http://www.igoodnews.net/WZ_NP/section/view.asp?tbcode=TB01&cseq=1&seq=7256 ’주기도문’에 ‘아버지’는 성차별적 표현? (한겨례)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5/005000000200505140935001.html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배 자료 모음
장례예배 인터넷 자료 (사랑의 교회 경조부) http://www.rokcc.co.kr/process/process_4.htm 상.장례 절차 (일반) http://www.root.re.kr/myo/separation/book8-4.htm 장례관련 사이트 목록 (조문넷) http://www.jomun.net/phtml/data_view.php?no=10&p=1&key=&keyword=¶m=3 기독교 장례문화 개발을 위한 10가지 아이디어 (송 길원) http://hwoijoong.hihome.com/lecture9.htm 신촌포럼 (장례문화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hinchon.kehc.org/cell/forum4.htm 그리스도교 祭禮 儀式의 한국문화 土着化 과제에 관한 연구 (김 경재 교수) http://www.hanshin.ac.kr/~press/explanation/h.disser/h.disser14-2/1.htm 장례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과 루터의 장례식 설교에 관한 소고 (김 문기 교수) http://sgti.kehc.org/data/person/mgkim/05.htm 장례예배 관련 좋은 논문 소개: 전 병식 목사, 한국감리교회에 있어서의 장례의식의 토착화 모형연구: 선교적 장애와 목회사역적 갈등의 극복을 위해. 클레어먼트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 (A Model for the Indigenized Funeral Rites in the Korean Methodist Church: Cultures in Conflict in Pastoral 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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