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28, 2007

조상제사에 대한 신학적-목회적 이해

-한국교회의 예전적 영성을 위하여
이 정 순

I. 들어가는 말
해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이 돌아오면 한국 기독교인들은 저마다 남모르는 고민을 한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해서 거의 모든 가정에서 행해지는 제사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또 참여한다면 제사상 앞에 절을 할 것인가, 아니며 고개만 숙일 것인가 하는 따위의 고민이다. 교회마다 이른바 추도예문을 배포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제사를 대체하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먼 느낌이다. 아직도 거의 모든 개신교회들은 조상제사는 이교도적인 예식이요, 우상에게 절하는 우상숭배이므로 당연히 금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실정이다. 선교 100주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제사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자, 교회 내에서는 우상숭배로 언급조차 꺼리는 금기사항으로 되어버렸다. 교회 내에서는 신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런 제사거부가 정당화되고, 고무되지만, 기독교인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여전히 이방인처럼 머뭇거리며 조상에 대한 불효자들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조상제사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적대감은 일찍이 선교사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인 조상제사가 선교사들의 눈에 용납할 수 없는 이교의식이자 우상숭배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기울어져 가는 조선조 말 부패한 왕조문화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유교에 대한 거부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때문에 선교 초기부터 제사를 중심으로 한 유교전통과 서양에서 들어온 보수적인 그리스도교는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잘못된 만남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한 선교보고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이 당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자들에게 최대의 장애물은 한국 유교전통의 제사의식이었다. 아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아버지를 배반하고, 자신의 의무인 죽은 사람에 대한 효(filial reverence)를 그만두는 것을 의미했다. 사회구조 전체가 유교적 형태로 짜여있는 나라에서 이 보다 더 큰 죄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욕을 먹고 돌을 맞는다. 그리고 종종 가문에서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법을 어긴 이방인의 부류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 . . . 여성들 역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매를 맞고, 때때로 살해되곤 했다.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충성이 아닌 다른 곳에 대한 충성을 의미했기 때문이며, 이것은 유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그리스도인들의 제사에 대한 거부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얼마나 유교에 배타적이었는지, 그리스도인이 되는 즉시 유교의 모든 의식들을 거부해야 되고, 이것은 당연히 유교의 최고 규범인 부모와 조상에 대한 효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시 보수적인 서구 선교사들의 한국문화전통과 종교 전통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10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제사에 대한 거부는 변함없이 계속되고있다. 과연 제사가 무엇이길래 아직도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넘지 못할 산으로 남아 있는가? 왜 그리스도인들은 민족 고유의 명절 때만 되면 갈등을 겪고 가족들과의 불화를 겪어야 하는가?비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자라 교회에서 보수적인 신앙을 배웠던 필자는 오랫동안 이 제사문제를 안고 살아왔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서도 역시 이 문제를 고민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아왔다. 때문에 제사문제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한낱 낡아빠진 문제가 아니라, 깊이 있게 신학적으로 논의하여 정리해야할 문제라고 본다. 이것은 목회적 차원과 선교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한국 전통문화에 바르게 뿌리 내린 한국적 그리스도교를 건설할 때만 바른 목회와 바른 선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알게 모르게 전통종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 제사문제만은 유독 우상숭배로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리스도교 장례문화만 보더라도 그 틀은 여전히 유교식을 따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과연 제사란 무엇인가? 제사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런 물음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물론 이 글에서는 유교적인 전통에서 비롯되어 현재 명절 때마다 행해지고 있는 조상제사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한국 개신교회의 상황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또한 단순히 제사의 문제만을 언급하지 않고, 그것을 그리스도교의 예배의식과 견주려고 한다. 참다운 평가나 만남은 창조적, 비판적 수용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제사의식이야말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예전적 영성(liturgical spirituality)을 형성하는 데 좋은 통찰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I. 조상제사에 대한 일반적 이해 조상제사는 오래된 풍습이다. 학자들은 고조선시대까지 그 기원을 잡는다. 많은 요소들이 한국의 제사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고조선시대의 하늘 신 숭배의식, 샤머니즘(무속), 도교, 불교, 유교 등이 오늘날 한국인의 각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사 문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중 하늘 신 숭배사상과 샤머니즘의 영향은 특히 중요하다. 첫째로, 고조선 시대에는 동맹, 영고, 무천, 서도 등과 같은 의식이 행해졌다. 이런 의식들 속에서 고대 한국인들은 매년 하늘 신에게 제사를 드린 후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를 치루곤 했다. 이런 의식들은 한국인들의 종교 영성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샤머니즘은 한국의 모든 종교에 가장 많이 영향을 요소이다. “샤머니즘은 그 신축성과 수용성으로 인해 ,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주요 종교 전통들 속에 성공적으로 통합되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샤머니즘은 개인과 사회의 무질서로 인해 야기된 갈등을 임시적으로나마 해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직도 제사 의식에서 나타난다. 즉 조상을 잘 모심으로 내가 잘되고 후손이 잘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하지만 엄격히 볼 때, 제사가 체계화된 것은 고려시대에 와서다.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성종 때 오인유가 종묘와 사직을 모심으로써 왕실에서 제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안향, 정몽주, 길재 등의 유학자들이 중국의 주자학을 수입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섰고, 이런 와중에 『주자가례』가 고려에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유학자 정몽주는 이 주자가례에 의거하여, 죽은 부모를 위해 삼년상을 지내고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 각 집에 사당을 짓는 것을 주요 풍습으로 확립시켰다. 이후부터 유교식 조상제사는 한민족의 가장 중요한 국가의례이자 민족적인 풍습으로 자리잡아 내려오게 되었다. 특히 조선왕조가 유교를 국가 종교로 채택함으로써 제사는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사실 고려시대에 들어온 이런 유교식 조상제사는 중국 고대 주왕조 시대까지 그 기원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고대 주왕조 사람들은 인간은 기(氣)와 형(形)이 합하여 생명으로 탄생하며, 기는 하늘의 신령한 기운의 정수로서 혼기(魂氣)라 부르고, 형은 땅의 신령한 기운의 정수로서 형백(形魄)이라 불렀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혼기와 형백이 통일되어 있는 것이고, 죽으면 혼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형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죽으면 혼백이 떠나간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간관은 후대 신유교에 들어와서는 더욱 복잡해진다. 태어난다는 것은 기운이 모이는 것이요 죽는다는 것은 기운이 흩어지는 것이라는 사생관이 확립되어, 사람이 죽으며 혼이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내려간다고 보았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혼)이 죽은 후에 영원히 남는 것인지, 죽음과 더불어 진짜 완전히 소멸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단지 조상의 혼(영혼)은 일정 기간(보통 4대) 동안 사라지지 않으므로, 제사 때 향을 피워 공중에 떠다니는 혼이 내려오고 술을 땅에 뿌려 땅 속의 백이 올라와 혼백이 함께 제사 상에 임해 후손들과의 감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상제사는 바로 살아있는 후손이 조상들의 혼백과 특별한 의식을 통하여 만나는 조상의 은혜를 생각하고 갚는 의식이며, 후손들은 이 의식을 통하여 조상들과의 역사적인 연속성을 느낀다. 죽어서도 조상의 혼백은 후손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제사는 이런 독특한 인간이해에 기초하여 조상에 대한 효를 표현하는 의식인 것이다. 물론 조상제사를 이런 도덕주의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깊은 종교적인 예식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경재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교를 종교로서 지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종교의례인 조상제사란 바로 혈과 육을 떠나간 조상들의 혼백을 종교적 의식절차를 통해, 신성하게 성별된 속의 시공간 자리에 임재하게 하여, 일상성의 시간 속에서는 단절되고 불통된 조상들의 혼백들과 살아 있는 후손들과의 신비한 영적 교통을 경험하자는 종교의례라고 볼 수 있다. . . . . 죽은 자들의 영혼, 즉 혼백이 어떤 형태로든지 불멸한다는 믿음과, 속의 시간이 아닌 성스러운 종교적 시간 안에서 그 혼령들은 살아 있는 생명들과 영적 감응과 교통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없이는 제사가 성립되지 않는다.이 점은 유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과도 연관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사가 유교의 가장 중요한 의식임에 틀림없지만, 이것을 하나의 종교적인 예식으로 간주하는가, 아니면 단순히 도덕적인 효의 표현으로 보는가의 문제는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에서도 큰 영향을 끼친다.

III. 효의 표현으로서의 제사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사를 이해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먼저 제사를 종교적인 예식으로 간주하여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이 교통하는 신비한 의식으로 간주한다면, 그리스도교 쪽에서는 수용하기 힘들 것이다. 또 현재 한국사회 전반에서 명절 때마다, 또 죽은 자들의 기일 때마다 드려지는 제사가 과연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매우 불확실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유교도라고 자처하는 인구가 매우 적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많은 이들이 공식적인 유교의 테두리를 떠나서 민족적인 고유풍습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래 정통 유교식 제사와 현재 한국 사회 가정에서 드려지는 제사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식의 제사는 다분히 조상에 대한 효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바로 제사를 이렇게 이해할 때 그리스도교와의 적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그렇다면 효는 무엇인가? 일찍이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근본을 세우고자 힘쓸 것이니, 근본이 서야 도가 생길 것이다. 효와 형제애는 인간됨의 뿌리이다”(『논어』제2장). 인간이 인간되는 데 가장 중요한 근본이 효라는 것이다. 이 효가 바로 조상제사로 표현되는 것이다. 옥스퍼드종교사전에서는 효를 이렇게 정의한다.“동아시아인의 사회윤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되어온 덕목인 효는 공자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조상을 숭배하는 고대의식의 영향을 받았다.” 효란 한마디로 삶의 기원에 대해 감사하고, 부모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도덕적 행동은 살아있는 부모뿐 아니라 죽은 부모에까지 표현된다. 이것은 현재 개인의 실존은 과거 죽은 조상과 더 나아가 생명의 기원과의 연관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유교식 인간관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효는 바로 제사와 같은 의식을 통해서 죽은 조상들에게까지 계속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학자 노영찬은 이렇게 말한다. 유교적 도덕 체계의 핵심인 효는 부모가 살아있을 때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죽은 후에도 표현된다. 따라서 조상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효를 표현하는 가장 효과적인 의식이 되어왔다. 유교도들에게, 삶과 죽음은 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효란 인간의 도덕적 수양(함양)이 근거하고 있는 토대이기 때문이다.이처럼, 유교전통은 인간존재를 분리된 개인으로 보지 않고, 과거와 현재 속에 존재하는 인간 공동체의 써클로 본다. 과거의 조상이 없이, 인간은 현재에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조상을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런 기억이 제사의식으로 형태화된 것이다. 이 것은 또한 유교식 삶의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요 유교경전 중 하나인 『중용』에서는 제사를 효의 극치로 규정한다.효성이 지극한 사람은 조상의 뜻을 잘 잇고 조상의 일을 잘 이어나가는 자를 말한다. . . . 자기 조상의 자리에 나아가, 예를 행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조상이 높이시던 것을 공경하며, 조상이 아끼시던 자들을 사랑하며, 돌아가신 자들을 마치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있는 자들처럼 공양하는 일, 이것이 바로 효의 지극한 것이다(중용 19장). 따라서 조상제사는 일반 종교에서와 같이 인간의 구원이나 복을 추구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기원과 그 조상에 대해 감사와 효를 표현하는 것이 그 주목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상제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죽은 조상들에 대한 효의 상징적인 표현들인 것이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부모들에게 드리는 효의 표현과 동일하다. 이런 의미의 제사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종교학자 강위조는 제사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제사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서 강력한 제도가 되어 버렸다. 제사는 한국인들이 삶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소속감을 함양하는 거룩한 상징이었다. 제사와 가정이 없이 한국인들은 실존의 의미감을 잃어버린다. 제사의식을 거행함으로 한국인들은 효와 충의 가치를 보존하게 되었고, 결국 가정을 강화하고 한국사회의 구조를 공고히 하게 되었다.

IV. 제사에 대한 성서적, 신학적 이해
1. 제사에 대한 성서적 이해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출애굽기의 십계명(출애 20:3-4)에 근거하여 조상제사를 우상숭배로 간주하여 거부한다. 이들은 성서적 신개념의 배타성과 유일성을 강조한다. 바로 이 점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제사를 수용하는데 가장 장애물이다. 때문에 출애굽기 십계명 제 1계명과 2계명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현대의 사회학적 성서해석이 많은 도움을 준다. 먼저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과 유교 전통에서 너무도 다르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유교 전통에서는 유대-그리스도교적 유일신 사상이 발전된 적이 없다. 유대-그리스도교적 신(야훼, 테오스)을 유교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따라서 이런 신과 반대되는 우상도 찾을 수 없다. 문제가 되는 십계명의 정신은 출애굽기 20장 2절의 십계명 전문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여기서 주(야훼) 하나님은 에집트에서 억압당하던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킨 위대한 해방자로 나타난다. 이런 컨텍스트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과,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신들과 우상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당시 고대 근동 국가들에서 억압의 신, 왕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던 신들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들은 거짓 신들이며, 우상들이다. 바로 이런 거짓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인간을 억압하던 이런 거짓 신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때문에 히브리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세운 국가의 이름이 이스라엘이었고, 그 뜻은 “야훼여 통치하소서”였다. 바로 이런 모노 야휘즘은 성서전체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 작용하고 있다. 출애굽기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런 맥락과는 달리 유교전통에서는 이런 독특한 신 개념이 없다. 비록 천(天), 상제(上帝), 태극(太極), 이(理)와 같은 절개적 초월적 개념이 등장하지만, 히브리들을 해방시키는 해방자 신은 유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유대-그리스도교적 전통의 신을 유교적인 전통의 신과 직접 비교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컨텍스트와 무관하게 한 구절만을 뽑아 문자적으로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종교적인 진리를 왜곡하는 매우 위험한 짓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조상에 대한 효가 깊고 진실되게 표현되는 곳이 바로 유교식 제사이다. 성서에도 효에 대한 강조는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잠언1:8-9).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에베소서 6:1). 또한 부모와 조상에 대한 공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조상의 하나님으로 부르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미 야훼 하나님이 자신을 이렇게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출 3:6). 이렇게 볼 때 효란 개념 역시 성서 전통에서도 무시되지 않고 있으며, 조상을 떠나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조상을 숭배하는 제사를 효의 표현이라고 볼 때 그리스도교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2. 조상제사와 성도들의 교통(교제)
그리스도인들이 예배 때마다 외우는 사도신경에 보면 ‘성도들의 교통’(communion of saints, communio santorum)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이 구절은 원래 초대 교회에서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이미 죽은 성도들과의 교제를 의미했다. 곧 제사처럼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이 교통함을 의미했다. 신학자 데이(Gardiner M. Day)는 이렇게 설명한다. “분명 이 조항(성도들의 교제)은 이전 항목, 곧 거룩한 공교회(the Holy Catholic Church) 항목이 확대된 것이다. 곧 가시적 불가시적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 하나가 된, 모든 그리스도인들, 곧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교제를 의미한다.” 이 성도들의 교제는 초대 그리스도교 신앙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성도들의 교제는 하나님의 사랑이 구현되는 장소들 중의 하나였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약속은 죽음이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성도들의 교제를 분열시킬 수 없다는 점을 암시적으로 믿게 했다.” 바로 이런 본래적인 의미가 종교개혁이후에 바뀌게 되었다. 곧 성도들의 교제는 기존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상 죽은 자들을 위한 의식을 거행한 많은 예들이 있다. 3세기에 그리스도교 교회는 죽은 자들의 무덤 앞에서 성만찬을 행하곤 했다. 이것은 산자와 죽은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함께 떼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간주하는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예식은 또한 순교자들을 위해서도 행해졌다. 드리스콜(Michael S. Driscoll)은 이렇게 말한다. “성만찬과 순교자 사이에 관계가 이루어졌다. 곧 피를 흘리기로 부름받은 자들울 위해 성만찬을 거행하거나, 아니면 성만찬에서 이미 순교를 당한 자들을 기억하곤 했다.” 게다가, 주일날 거행하는 성만찬에서도 죽은 성도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죽은 자들에 대한 예전은 성인숭배(cult of saints)와 연관되어 광범위하게 발전되었다. “처음에 이것은 죽은 성도들을 찬양하고 모방하는 형태로 시작되었으며, 매장지 앞에서 축하와 기도의 모임을 포함하게 되었다. . . .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고대 세계에서 무덤은 인간과 신이 접촉하는 장소였다. 무덤은 죽은 자들의 집을 나타냈다. . . . . 한 가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무덤을 성인(성도)들이 들어가는 특권적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영웅과 마찬가지로, 성인들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매개자로서 기능하는 중재자로서 간주되었다.”그리스도교 역사상 성인숭배와 그들이 행하는 중재역할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입각해서 성인들의 중보를 부정했으며, 성인숭배를 교외에서 금지시켰다. 왜냐하면 성인들에 얽힌 온갖 종류의 전설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부패한 카톨릭을 향한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당시 상황에서 타당했다.하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리스도교 삶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중요한 상징들과 예전들을 모두 없애버리는 역할도 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예전은 가장 빈약한 형태로 변화되었다. 때문에 현재 많은 교회들이 사라진 전통과 상징의 복원과 비판적 수용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특히 성도들의 교제라는 사라진 전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전통을 통해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좀더 긍정적으로 죽은 자들을 바라보고, 그럼으로써 유교의 제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도들의 교제라는 전통은 믿음의 근원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을 존경(veneration)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고,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본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도들의 교제’는 유교식 제사와 만나는 접촉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학자 정진홍은 빈약한 개신교 예전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개신교 의례는 죽어 있는-산-사람의, 그리고 살아 있는-죽은-사람의 공동체를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그 세속화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살아 있는 이의 공동체가 죽은 이의 공동체와 어우러져 있지 못하면 그것은 참다운 인간의 공동체가 아니다. 조상숭배라든가 조상의 신격화라고 하는 뜻에서 장례와 제례가 설명되는 것은 신학의 편견이 빚어낸 불행한 독단이다. 장례와 제례는 공동체, 곧 인간의 삶의 표상을 다시 읽어 나가는 맥락에서 되살펴져야 할 중요한 관건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은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는 산 사람의 공동체는 생명의 존엄 자체마저도 상실한다. 신위를 모시고 제수를 진설하고, 청신하여 헌주하고 절하며 아뢰는 모든 재차는 우상숭배도, 신에의 배신도, 주술적인 기복도 아니다. 그 모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죽어-살아 있어-아직도 우리와 더불어 사는 분과의 관계 맺음이 이 루어지는 공동체적 삶의 모습이다.”정진홍의 지적에 대한 답은 한국 개신교회가 조상제사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의 독특한 토양에 그리스도교 예전을 토착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아직도 한국문화는 유교적 제사의식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사회이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무리 우상숭배로 몰아부쳐도 쉽게 사라질 수 없는 민족적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언제까지 제사를 배척하기 보다는 긍정적인 측면, 곧 산자와 죽은자를 포함하는 아름다운 인간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성도들의 교제’라는 전통은 양자의 만남을 가능케 해주는 근거가 된다. 신학자 데이는 이렇게 지적한다. “성도들의 교제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과 사랑을 함께 나누게 되는 공동체, 과거, 현재, 미래에 속한 성도들의 불가시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에큐메니칼 공동체를 의미한다.” 1980년대 들어와 세계교회협의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사라진 전통들을 복원하여 발간한『세례, 성만찬, 목회』는 필자의 이런 주장을 잘 뒷받침해 준다. “주님과 연합하고, 모든 성도와 순교자들과 교통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날인된 언약으로 새로와진다.” 더 나아가 조상 제사는 성도들의 날처럼 중요한 의식으로 정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죽은 자들의 기일을 기념했다. 특히 순교자들의 기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순교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를 이루었으며,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이 “성도(인)들의 날”(All Saints Day)로 자리잡게 되었고, 오늘날 서양의 많은 교회들에서는 개신교든 카톨릭이든 정교회든 이 성인의 날을 교회명절로 지킨다(미국의 경우 11월 1일이며, 교회에서는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지킨다). 이것은 너무도 성서적이고 당연하다. 잘 알다시피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근본주의적 배타성을 자랑하는 한국교회에서도 이 전통을 살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성서만을 신앙의 태도에서 벗어나 죽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과거의 신앙 전통을 창조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또한 의미한다. 죽은 성도들을 생각하게 될 때 비로소 그리스도교 이전의 수많은 조상들도 자신의 과거요 뿌리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3. 제사와 성만찬제사는 효를 표현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제사를 죽은 자들을 신처럼 예배하는 의식이 아니라, 한 가족과 사회를 봉사하는 데 필요한 실제적인 규범으로 생각한다면, 제사는 그리스도교의 성만찬과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인 만남에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에 나아가 평화와 화해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촉구하기 때문이다. 비록 개신교 전통에서는 대폭 축소되었지만, 성만찬은 그리스도교 예전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핵심을 차지했다. 성만찬의 기원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지만,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시작되어 초대교회에서 발전된 것으로 본다(고린도전서 11:23-25 참조). “성만찬은 거룩한 음식으로서 가시적인 상징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거룩한 음식이다. . . . 성만찬을 거행하는 것은 교회 예전의 중심행위로서 계속된다.” 이렇게 성만찬은 초대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중심적인 예전으로 행해졌다. 물론 그 의미는 다양하다. 『세례, 성만찬, 목회』 문서는 성만찬의 다섯 가지 요소를 지적한다.“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 그리스도를 기억함, 성령의 임재를 기원함, 성도간의 사귐, 하나님 나라의 음식” 필자는 여기에서 성만찬의 네 번 째 요소인 성도간의 사귐(fellowship of the faithful)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성만찬의 사회적 의미로서, 성만찬을 나눔의 잔치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점은 제사와 공통점을 이룬다. 조상을 기리며 차린 음식을 제사 후 다 같이 나누기 때문이다. 집안 제사가 발달하기 전에는 마을 단위로 드리는 부락제에서도 이런 나눔의 잔치는 어김없이 열렸다. 바로 제사와 성만찬은 나누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세례, 성만찬, 목회』문서는 성만찬이 갖는 나눔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성만찬의 거행은 하나님의 한 가족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간주된 자들 사이에서 화해와 나눔의 실천을 요구하며,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삶 속에서 적절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계속 도전을 준다. . . . . 그리스도의 몸의 성례적 교통 속에 연대하는 것과,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세계에 대해 책임을 다해 돌보아야 한다는 것 등이 예전에서 발견된다: 서로의 죄에 대한 용서, 평화의 표징,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보기도,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눔, 병자들과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해 떡을 떼거나 그들과 함께 성만찬을 기념하는 것 등.성만찬의 의미를 나눔의 정신으로 보는 것은 역사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위의 문서도 예수의 운동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가 군중 밖 죄인들에게로 나가 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을 거행하면서 소외된 자들과 연대하고, 이런 모든 자들을 위해 삶을 바치고 희생했고 이제 성만찬에서 그 자신을 내 놓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징표가 되라고 부름을 받는다.” 민중신학에서는 이 점을 더욱 분명히 한다.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은 철저히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과의 삶을 함께 나누는 운동이었고, 바로 이 운동을 계속 기리고 다짐하는 것이 성만찬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벌인 하나님 나라 운동, 곧 나눔과 섬김과 희생의 운동의 전통이 초대 교회에서 애찬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언제부터인가 성만찬 예전으로 축소 변형되어 행해졌고, 그나마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거의 자취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성만찬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기억하는 중요 의식으로 다시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성만찬은 참된 인간 해방을 위한 동력을 상징하기까지 한다. 성만찬을 통해 우리는 참된 인간의 해방을 위해 헌신했던 예수와 만난다. 아시아 신학자 발라수리아는 이렇게 설명한다. “성만찬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총체적인 인간해방을 위해 예수가 자신을 바쳤다는 데 있다. 음식으로써 성만찬은 또한 이와 같은 대의에 참여하는 자들을 연합시키는 상징이었다.” 이렇게 성만찬을 나눔과 섬김과 희생과 인간해방의 상징으로 이해한다면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사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제사문제를 좀더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제사 문제를 공동체적 나눔의 행사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학자 박종천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서의 제사를 거부하고, 대신 효의 윤리적 표현으로 제사를 이해한다는 전제에서, 공동체 지향적인 그리스도교 윤리를 재형성하는 과제와 제사를 연관시킨다. 그리스도교 추도의식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동체를 형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추도예배가 있지만 이것은 죽은 자의 영혼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사는 여전히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포괄하는 공동체를 형성시켜, 살아 있는 자들의 나눔과 화해를 촉진시킨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개신교회가 조상 제사를 중요한 의식으로서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을 제안한다. 곧 한 상에 음식을 차리고, 함께 절을 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매우 타당한 제안이라고 생각된다.신학자 송촨셍(宋泉盛) 역시 조상제사를 죽은 자들에 대한 예배가 아님을 지적하면서, 성만찬적 요소가 담긴 긍정적인 요소로 이해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그는 각종 종교 신앙과 행사가 가족 유대를 근간으로 삼아 이루어지고 있는 아시아에서는 조상제사가 성만찬의 가족적, 친교적 성격을 복원시키는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조상제사에서 . . . . 죽은 이의 끊어지지 않는 현존이 가족의 유대를 보존하는 데는 물론 사후 생명에 대한 믿음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조상제사에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주님의 식탁에 앉는 크리스챤들이 나누어 가질 만한 긍정적인 요소들이 있다. 빵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나누어 받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현존을 체험한다. 그런데 이 체험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와 그리스도 안에 누리는 우리의 생명에만 생각을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속하는 가족의 중심이심을, 이승을 떠나 다른 생명으로 건너간 이들과 장차 우리 뒤를 이을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가족의 중심이심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성사적 생명 체험의 한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우리 가족의 모든 성원들과 더불어 참다운 친교, 십자가와 부활의 기초 위에 세워진 친교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주님의 성찬 은 참으로 가족 만찬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친교가 되어야 한다.

V. 나가는 말-한국교회의 예전적 영성을 위하여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여러 종교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해 온 다종교 사회였다. 어느 종교도 외래 종교로서 순수한 형태를 간직하며 홀로 존재하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토양 속에서 온갖 종교들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스도교도 예외가 아니다. 비록 보수적인 형태의 그리스도교는 아직도 서구의 그리스도교를 표준으로 삼고 다른 종교의 영향을 거부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땅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순수한 종교는 없다. 모든 종교가 서로의 영향 속에서 자신을 형성해 나갈 뿐이다.필자가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미국식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한국적 그리스도교와 다른지 절감하곤 한다. 보수적인 미국 선교사들에 시작된 한국 교회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현재의 미국교회와 너무도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미국 사회에는 조상제사 풍습이 없다. 또 절을 하면서 예를 표하는 의식도 없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당연히 제사는 논쟁거리가 될 수가 없다. 때문에 십계명에서 금지하는 우상에 대한 이해도 다르다. 팔레스타인 땅이나 한국과도 다른 또 다른 문제들이 우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이곳에서는 교회 절기 중 하나로 성인들을 기리는 예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얼마든지 죽은 자들에 대한 기도도 가능하다. 이것은 물론 교리적인 이유보다는 주로 목회적인 배려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조상제사문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과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계속 제기되는 문제이다. 특히 유교식제사 풍습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문화적 전통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이 제사 의식을 창조적이고,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수용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고 유교도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전통의식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전이 더욱 풍부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제사를 부모와 조상을 생각하고 드리는 효의 표현으로 볼 때 수용하는 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 우리는 조상의 근원을 바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바로 그 조상의 하나님이 그리스도교적 전통으로 보다 분명히 나타난 보편적인 하나님인 것이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기도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제사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키는 포괄적인 인간 공동체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리스도교의 사라진 전통인 ‘성도들의 교통’을 복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죽은 성도(성인)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과거의 연옥설과 같은 교리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단지 살아 있는 자들이 드리는 효의 표현이요, 염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기억함은 살아 있는 자들의 실존을 확인케하고 타인들과의 나눔을 통한 공동체를 형성케 하기 위함이다. 사실 이런 점에서 죽은 자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 죽음의 의미를 생각게 하는 것은 목회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더 나아가 성만찬이 갖는 나눔의 의미를 생각할 때 제사를 수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서만 일년에 몇 번씩만 드리는 성만찬에서 끝나지 않고, 조상들을 기리는 제사 때마다 이런 나눔의 의미를 계속 되새기게 됨으로써, 제사는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제사는 그리스도교의 예전적 영성(liturgical spirituality)를 발전시키는 데 공헌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 강위조의 제안대로, 제사는 신앙과 삶이 분리되고, 교회와 가정이 분리된 채 오직 교회에만 초점을 두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영성을 갱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곧 제사가 집안에서 드리는 성만찬(Eucharist at home)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 성만찬의 목적은 그리스도교 가정울 강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공동 예배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야 한다. 가정 성만찬은 풍요로운 가정생활을 통해 새로워지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부름이다.” 여기서 필자가 예전적 영성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개신교식의 빈약한 예전으로는 더 이상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지나치게 신비화되고 마술화되어 그리스도교 본래의 신앙에서 거리가 멀어진 예전과 상징들을 없애버리고 오직 말씀 위주의 단순한 예배로 축소시켜 버린 것이 당시의 상황에서는 타당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와 상황이 다른 현대 사회에 사는 인간들은 일방적인 말씀 선포가 주를 이루는 예배에는 크게 공감하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청각적인 요소 외에도 시각적인 요소, 상징적인 요소가 가미된 예전에 더 잘 반응하며 신비를 체험한다. 이 점이 바로 말씀 중심적 듣기위주의 영성이 아니라 총체적인 예전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개발하는 예전적 영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이다. 물론 이런 예전적 영성은 개신교라는 독특한 전통의 토대 위에서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유교적 제사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죽은 조상들에 대한 의식으로 성도간의 교제라는 전통이 살아나고, 함께 나눔이라는 성만찬의 의미가 보다 생생하게 체험되게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예전적인 영성(liturgical spirituality)이 비로소 발전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제사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제사가 여전히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사 의례에 포함되어 있는 봉건적인 계급의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는 않은지, 실제 유교도들은 조상신을 종교적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할 때 조상신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이 남아 있다. 이점은 계속해서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정순충남대학교 영문과를 나와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과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보스톤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과 영성 전공으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First Congregational Church of Waverley-Senuri 담임목사로 목회하면서, Merrimack College 종교학과에서 종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Friday, March 16, 2007

성경을 묵상하는 방법

Use lectio divina in your daily reading of scripture or as you read the quote for the week.
One of the most central and ancient practices of Christian prayer is lectio divina, or divine reading. In lectio divina, we begin by reading a few verses of the Bible. We read unhurriedly so that we can listen for the message God has for us there. We stay alert to connections the Spirit may reveal between the passage and what is going on in our lives. We ask, “What are you saying to me today, Lord? What am I to hear in this story, parable, or prophecy?” Listening in this way requires patience and a willingness to let go of our own agendas and open ourselves to God’s shaping.
Once we have heard a word that we know is meant for us, we are naturally drawn to prayer. From listening we move to speaking — perhaps in anguish, confession or sorrow; perhaps in joy, praise, thanksgiving or adoration; perhaps in anger, confusion or hurt; perhaps in quiet confidence, trust or surrender. Finally, after pouring out our heart to God, we come to rest simply and deeply in that wonderful, loving presence of God. Reading, reflecting, responding and resting — this is the basic rhythm of divine reading.

1. Read the scripture slowly.
Watch for a key phrase or word that jumps out at you or promises to have special meaning for you. It is better to dwell profoundly on one word or phrase than to skim the surface of several chapters. Read with your own life and choices in mind.

2. Reflect on a word or phrase.
Let the special word or phrase that you discovered in the first phase sink into your heart. Bring mind, will and emotions to the task. Be like Mary, Jesus’ mother, who heard of the angel’s announcement and “treasured” and “pondered” what she had heard (Luke 2:19).

3. Respond to what you have read.
Form a prayer that expresses your response to the idea, then “pray it back to God.” What you have read is woven through what you tell God.

4. Rest in God’s word. Let the text soak into your deepest being, savoring an encounter with God and truth. When ready, move toward the moment in which you ask God to show you how to live out what you have experienced.

Wednesday, March 14, 2007

성탄절 자료 링크

KCM 성탄절 자료 http://kcm.co.kr/Christmas/index1.html
2006 대림절 네번째 주일 설교자료 (영문) http://www.textweek.com/yearc/adventc4.htm 2006 성탄절 설교자료 (영문) http://www.textweek.com/festivals/christmas.htm
아시아의 성탄 이미지 (그림모음) http://www.asianchristianart.org/galleries/nativity/nativity.html

교회력과 한국 전통의 절기 (이정훈 목사)

교회력과 한국의 전통 절기(1)
http://historicaljesus.co.kr/view.php?id=article&page=2&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0 교회력과 한국의 전통 절기(2)
http://historicaljesus.co.kr/view.php?id=article&page=2&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24 교회력과 한국의 전통 절기(3)
http://historicaljesus.co.kr/view.php?id=article&page=2&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37

사순절 재의 수요일 예배 순서(연합감리교회)

재의 수요일 예배순서

환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목사님과도 함께 하기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을 송축합시다."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합니다." (혹은 "영원한 자비의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여는 기도

찬송

성경봉독 (요엘서 2:1-2, 12:17)

[시편] 51편 1-17을 여기서 읽거나, 나중에 회개의 기도를 대신한다

성경봉독 2 (고린도후서 5:20후반-6:10)

찬송

복음서 봉독 (마태복음 6:1-6, 16-21)

설교/말씀묵상

사순절 순례의 길로 초대함
(사순절의 의미를 간단히 설명한 후, 회개, 절제, 기도, 금식, 자기부정, 말씀묵상 등을 실천하도록 초청한다.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고백하고, 회개의 삶을 시작하는 표시로 우리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앞에 무릎꿇고/머리숙여 기도합시다"하며 잠시 조용히 기도한다.)

재에 대한 감사의 기도
("흙으로 저희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이 재를 통해 우리의 유한성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시며, 오직 당신의 은혜로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재를 바르는 의식
(엄지에 묻힌 재로 각 사람의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며,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한다. 회중들은 조용히 기도하거나 찬송을 부른다.)

죄의 고백과 용서
(시편 51편 1-17을 공동기도문으로 쓸 수 있다.)

평화의 인사
(서로 화해와 사랑의 인사를 나눈다.)

봉헌

감사의 기도

주의 기도

찬송

축도와 파송

(축도 후, 회중들이 조용히 예배당 밖으로 나간다.)

사순절 영성훈련을 위한 질문들 : 로렌스 스투키 (웨슬리 신학대학 교수, 예배학)

1. 내가 가진것을 다른 사람들(특히 낯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기꺼이 나누고 있는가? 전보다 나아지고 있는가?

2. 나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3. 예배를 드릴 때, 다른 회중들과 서로 (한 몸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이 생기고 있는가? 내가 속한 교회의 성도들이 기여하는 부분과 필요로 하는 부분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4. 다른 사람들에게 하듯이, 나의 가족들에게도 잘 하고 있는가? 학교나 직장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들을 소홀히 대하지는 않았는가?

5. 장기적인 예산재편성을 통해, 이웃과의 나눔을 위한 지출을 더 많이 할 수 있겠는가?

6.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었는가? 혹은 침묵한 채 방조하였는가?

7.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주는 법령이나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어떻게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가?

8. 경건한 기도와 독서를 통해 말하기 보다는 듣는 시간을 더 늘려가고 있는가?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시간을 더 늘려가고 있는가?

9. 나의 삶 속에서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중에, 그 뒤에 깊이 숨겨져있는 다른 차원의 편견들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10. 중보기도 외에 환자, 고통중에 있는 이, 사별의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특히, 그들이 긴급한 상황 속에 있고, 당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좀 더 책임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어떤 습관을 기를 수 있겠는가? 나의 삶 속에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돌볼 필요가 생겼을 때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11. 나는 꾸준히 예배를 드림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내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존귀함을 증거하고 있는가? 혹은 띄엄띄엄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은 가끔씩만 예배를 받으셔도 된다는 암시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Upper Room for Spiritual Development

다락방은 연합감리교회의 영성훈련 프로그램입니다.
개인이나 소모임에서 '교회력에 따른 매일묵상'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경말씀은 렉시오 디비나의 순서와 방법으로 읽기를 권합니다.
(매일 번역해서 올릴 다락방지기 구합니다.^^)

다락방 매일묵상 (한글)
http://www.clsk.org/upperroom/upperroom_view.asp?g_no=881&block=&page=1

예화중심의 다락방 매일묵상 (영문)
http://www.upperroom.org/devotional/

교회력에 따른 매일묵상 (영문)
http://www.upperroom.org/daily/

다락방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영문)
http://www.upperroom.org/daily/?page_id=9

Tuesday, March 13, 2007

매주 성만찬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개신교)

▣ 율석감리교회 (가흥순 목사) 감리교(기감)에서는 최초로 매주일 성만찬을 거행하였으며, 성만찬 예문집등의 출판을 통해 성만찬의 회복과 예배갱신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카페 쥔장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매주일 성만찬을 시작할 때에도 율석교회의 사례가 큰 도움이 되었다. http://www.yoolsuk.or.kr/

▣ 시온 한인 연합 감리교회 (선우혁 목사) 성만찬의 회복, 예배의 토착화, 평신도의 적극적 참여, 세대간의 다리놓기 등을 통한 예배갱신을 시도하고 있으며, 2002년 12월부터 매주일 성만찬을 거행하고 있다. http://cafe.daum.net/zionkumc

▣ 샘터 감리교회 (김성복 목사) -주일 예배에 대하여- 우리 교회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신 분들 중에 어리둥절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분명 감리교회인데 기존의 예배 순서와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예배서(1992년 선교국 간)를 바탕으로 "교회력과 절기에 따른 성만찬 예문집"(1998년 홍보출판국 간)과 리마 예식서(NCC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에 근거하여 제정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나 성공회, 그리고 루터교회 교인들도 함께 드릴 수 있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예배는 교회력을 따르면서 절기를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대강절(대림절) 과 성탄절, 주현절 과 사순절 그리고 부활절, 성령강림절과 창조절 혹은 왕국절의 절기를 지킵니다. 여기에 추수감사주일 등 특별주일 행사가 매주 진행됩니다. 또한 우리 교회 예배에서는 교회력에 의한 성서일과(Lectionary)를 사용하여 매 주일 마다 구약과 사도서신 그리고 복음서 말씀을 봉독하고 설교로 증거됩니다. 이 성서일과는 감리교 강단과 목회에 수록된 것을 거의 그대로 수용하여 사용합니다. 이러한 성서일과를 사용하는 교회들이 늘어감에 따라 매 주일 마다 같은 본문을 대하는 교회들이 늘어가고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일체감을 맛보고 있습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모든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장로교 성공회 정교회 가톨릭 교회까지 같은 본문으로 주일예배를 드리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우리는 매 주일 마다 성찬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10년 넘게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 초대교회부터 모일 때마다 떡을 떼었던 전통을 따라 행하는 것뿐입니다. 더구나 루터나 칼빈 그리고 요한 웨슬리의 종교개혁정신에도 성찬식은 강조되고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는 매주일 마다 성찬식에 참여하였으며 감리교도 들에게 이 성찬식과 세례를 집례 시키기 위하여 목사안수를 거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감리교회는 이 전통과 정신을 잃어버린 채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미국교회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성경의 가르침과 복음의 본래적 의미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의 예배는 말씀만을 강조하는 예배에서 말씀과 성만찬을 중심으로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http://samtuh.net/

▣ 자교감리교회 (이승호 목사) "성만찬 예식을 갱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은 곧 성만찬을 포함한 현재의 모든 예전과 예배의 내용, 성격이 그 어떤 원칙이나 모델에서 이탈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이탈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작업은 성만찬과 예배 갱신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되며, 갱신의 근본적인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현재의 예배, 특히 성만찬을 갱신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 형태가 초대교회의 전통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예배는 지나치게 설교 중심적이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는 성례전과 말씀이 조화를 이루었다.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가장 온전한 형태다. 그러므로 감리교회를 비롯한 한국 개신교회는 성만찬을 예배의 전체적 행위라는 배경에서 생각하고, 또 성만찬이 예배행위의 절정이어야 한다는 의식으로 예배 전통을 연구해야 한다. 둘째로, 기독교가 공동체적인 정신과 삶의 모습에서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고 자신들이 야훼의 공동체, 소집된 공동체, 그리스도의 몸,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된 지체라고 생각했으나 오늘날에는 개인주의 의식과 행동의 만연으로 교파간에도 갈등이 심하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주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일치와 화해, 연대성을 추구하는 예전, 예배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가야 한다. 셋째로, 성만찬 갱신은 한국적 상황, 나아가서는 토착화 과정에서 필요하다. '한국적 성만찬'은 기독교 성만찬의 전통을 살리면서 한국적 예복, 한국적 집기, 토착적 성만찬 예비 시도 등 실생활에서 토착화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하다. 성찬의 참 의미를 올바른 예전적 행위로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또 성만찬이 우리 교회의 참다운 예배 행위가 되고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게 하기 위해 앞으로 계속해서 성만찬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성만찬은 나눔의 사건이다.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고, 또 우리를 나누어 주는 삶, 즉 새로운 삶, 성숙한 삶의 세계로 부르신다.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당연히 교역자이며 이것은 교역자의 고유한 사명이다. 이 사명을 실천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만찬 예전이 삶의 예전이 되게 가르치고 돕는 일인데, 이는 성만찬이 우리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상징적인 예전이 아닌 본체론적 실재가 되기 때문이다." http://www.jakyo.or.kr/1999/991010.html (매주일 성만찬을 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목사님의 글을 통해 성만찬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짐을 알 수 있다.)

▣ 북부 보스톤 한인 연합 감리교회 (홍석환 목사) 매주일 1부 예배(8시)시 성찬예배를 드립니다. http://www.hanboston.org/index.html

▣ 성공회는... "성공회는 최초의 교회분열인 동서교회 (로마교회와 정교회)의 분열 이전의 초대교회의 신앙을 지킵니다. 그래서 성공회는 공적인 신앙고백으로 교회 분열 이전의 모 든 교회가 같이 고백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보유하고 있으며, 초대교회의 예배형태인 말씀과 성만찬이 하나로 어울린 성찬례(미사)를 통해 하느님을 예배합니다." 성공회의 신앙적 특성 가운데서... http://www.skh.or.kr/info.htm

▣ 성동 그리스도의 교회 (신동식 목사) "사도시대에는 매주 안식 후 첫날 즉 매주일 날에 이를 시행하였습니다.(행20:7) 혹자는 말하기를 이는 하나의 특수한 안식 후 첫날을 말한다고 하나 원어상에 보면 定冠詞가 씌어 있어 매주일임을 강조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니엔나에도 성만찬은 매주일 띄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교파교회들은 이 주의 만찬을 일년에 두서너번 거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기독교교리 제18장에 "적어도 매주 주의 만찬이 있어야 한다." 했고, 웨슬레도 역시 워커가 기록한 「웨슬레의 생애」336∼338쪽에 보면 "나도 역시 장로들이 매주 성만찬 식을 거행하기를 권고한다"고 말했습니다. 초대교회를 찾기 위해서는 성만찬식을 매주일 거행하여야 합니다. 혹자는 매주일 하면 존엄성을 잃는다고 하나 이 말은 성서를 무시한 억지입니다. 성서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서대로"의 원칙에 따라 매주 성만찬을 거행한다. http://www.sungdong.or.kr/

▣ 주님의 교회 (박찬희 목사,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성만찬의 회복은 예배가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이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주일이 "주님의 날"이듯 "성만찬"은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제정하시고 모일 때마다 행하라고 하신 "주님의 만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에서 "주의 만찬"을 회복하는 것은 예배에 참여하는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실 그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일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현하며 그 사건의 본질을 기념하며 그리스도의 희생과 더불어 예배자 자신을 거룩하고 산 희생의 제물로 드리는 헌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 주일 오전 11시 말씀의 예배, 오후 4시 성만찬의 예배 http://lord.kehc.org/chmain.htm

▣ 덕수 장로교회 (손인웅 목사, 성찬의 회복을 향하여...) "예배위원회가 2002년도 예배설계를 함에 있어서 염두에 두는 것은 초대교회의 예배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과 장로교 종교개혁자들의 예배개혁 의지를 다시금 조명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아가 미래 지향적으로 이러한 건전하고 역동적인 예배를 통해서 신앙이 성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첫번째 과제는, ‘성만찬 예전의 회복’을 통한 일치이다. 현재 세계교회의 예배의 흐름은 일치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즉 “선포되어지는 말씀”인 설교의 회복과 "보이는 말씀"인 성만찬의 회복을 통하여 원래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던 모습을 회복하는 일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성만찬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는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 가는 일이다. 이러한 예배의 개혁은 성만찬의 횟수를 늘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왜 우리의 예배가 성만찬적이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그러한 신앙과 신학으로 바로 잡아가는 일이 시급하다. 오늘의 세계 장로교회들은 적어도 월 1회의 성만찬 예식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 칼빈의 미완성 예배개혁 의지를 오늘의 상황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예배부는 주일예배는 말씀과 성찬의 예배, 토요일과 주일저녁예배는 구도자를 위한 예배 등으로 예배의 특성화를 꾀하며...(생략) 성례부는 성찬 예식서를 발간하며, 계속적인 성찬의 중요성을 교육하여 궁극적으로 매주 성찬을 거행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http://www.ducksoo.net/part.htm

▣ 예가교회 (조익표 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1세기 경 초기 기독교 공동체 예배는 첫째, 성경을 읽고, 둘째, 떡을 떼는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우리 예가교회의 예전도 이와 같습니다. 전반부는 말씀의 예전이고 후반부는 성찬의 예전입니다." http://www.yega.org/

김남중의 목회 아키브

http://doingtheology.co.kr/jboard/?p=list&page=1&code=ministry

The Benefits of the liturgy

...Michel and his followers spoke of the liturgy as a school of social justice. This did not mean simply that preachers spoke on social problems. Here the liturgy is once again crucial. In the liturgy, properly celebrated, divisions along lines of sex, age, race or wealth are overcome. In the liturgy, properly celebrated, we discover the sacramentality of the material universe. In the liturgy, properly celebrated, we learn the ceremonies of respect both for one another, and for the creation, that allow us to see in people and in material goods, "fruit of theearth and work of human hands," sacraments of that new order which we call the justice of the Kingdom of God.
-stated by Monsignor John j. Egan.
-The Unread Vision, p. 136

Offertory in the early church

Everyone brought something of his or her own to the altar-bread or wine, olive oil, some other product. No one brought his or her gift in isolation, but rather all joined together in that same procession, offering their gifts as a single offering to God. While some of the bread and winewas laid on the altar to be used fo rthe liturgy itself, the rest of that one offering was laid aside on tables for the poor and needy. Thus, in the direct service of God through their common sacrifice, they were indirectly serving the needs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This was active liturgical participation in the Mystical Body of Christ.
-The Unread Vision, Keith F. Pecklers, p.134

Virgil Michel

"...too long have sincere Christians looked upon their spiritual life as something shup up entirely within themselves and have tried to harden themselves against the evil infulence of the world even while leaving that same world to itself. We must be with Christ or against Him; we must either affect the world in which we live or else the world will affect us."
- The Unread Vision. Keith F. Pecklers, pp. 130-131

...Worship should continue in the streets and the market place, at work and at home. Christian life was to be an unceasing act of worship. When believers failed to live worshipful lives in other situations, they had knowingly or unknwingly accepted the secularist dichotomy of the culture which tended to keep religion separate from the rest of life.
-same book p. 133

*His word comes from the American situation which was governed by materialism, individualism, and secularism.

Friday, March 9, 2007

Websites for mp3 Sermons

Vcyameica.orgcrosswalk.comhttp://www.dongbu.org/
http://www.oneplace.com/ministries/In_Touch/archives.asp
http://www.sermonindex.net/modules/mydownloads/
http://www.sermonaudio.com/main.asp
http://wordforlife.com/wfl/download.html
http://elbourne.org/archives/2005/03/16/mp3-sermons/

Websites for worship

- calvin institute of xn worship for the study & renewal of worship.
- gbod.org/worship
- 기독예배와 토착문화의 만남(daum)
- Blended Resources: www.worshiplinks.com/conferences_main.htm
- Notre Dame Center for Pastoral Liturgy (Catholic): www.nd.edu/~ndcpl/
- M.A./Ph.D. Program in Liturgical Studies (Drew Univ.): www.drew.edu/grad/area/litst/
- Hymn Society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Boston Univ., School of Theology): www.humnsociety.org/
- The Institute of Liturgical Studies at Valparaiso Univ.): www.valpo.edu/theology/ils/
- The Institute for Worship Studies (Contemporary Worship): www.iwsfla.org

- 연합감리교회 예배 자료
1. Worship: www.gbod.org/worship/default.html
2. Order of St. Luke: www.saint-luke.org/
3. Hymn Site with Tunes: www.hymnsite.com/

- 이웃 교단 예배 자료
1. Common Worship(Church of England): www.cofe.anglican.org/commonworship/ 2. The Office for Liturgy and Music (Episcopal Church): www.episcopalchurch.org/lm/
3. Office of Theology and Worship (PCUSA): www.pcusa.org/pcusa/cmd/cfl/
4. Reformed Worship: www. reformedworship.org/
5. Worship (United Church of Christ): www.ucc.org/worship/index.html
6. Center for Transforming Worship (Disciples of Christ): www. transformingworship.org/Director.html
7. Lift Up Your Hearts (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Canada) www.worship.on.ca/ 8. Www.elca.org/worship/

- 예전 텍스트와 기타 자료
1. Book of Common Prayer I (Anglican/Episcopal): http://justus.anglican.org/resources/bcp/
2. Book of Common Prayer II (Anglican/ Episcopal): www.recus.org/bcps.html
3. Catholic Liturgical Library (Catholic): http://catholicliturgy.com/
4. Liturgical Studies and Liturgical Music: www.csbsju.edu/library/internet/theology.html
5. Liturgy Links: St. Mary's College (Catholic Resources including Vatican II Constitution on the Liturgy): www.smc.qld.edu.au/liturgy.htm
6. Liturgy Links (The Order of Saint Benedict): www.osb.org/liturgy/

- http://viamedia.or.kr/ 주낙현신부의 성공회이야기
- http://dabia.net 대구성서아카데미:좋은북리뷰가 있는 사이트

Websites for Sermon

http://www.lectionary.org/
http://www.gbod.org/worship/
http://www.textweek.com/
http://torch.op.org/preaching/

영어 찬양가사와 기타 코드를 구할 수 있는 사이트

www.iwillworship.com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의 다른 날에 예배 드릴 수 있는가?

Re: moving the Sabbath observance to a different day.
Basically, the answer is no -- the Sabbath is the Sabbath and that isGod-determined.
BUT as Jews were given the opportunity to be part of Western society,observance of the Sabbath was deeply challenged. Europe and America thenoperated on a six day work-week, and if one were to have a real job orattend European schools, then one could not observe the Sabbath strictlyor at all. This resulted in many compromises on the private level andsome on the official level.
Orthodox synagogues implemented an early service that unofficiallyallowed men (not women in those days, either in the synagogue or in thework place, often) to go to work afterwards.Some Reform synagogues did make Sunday their major day of worship. Avery few presented this as a Sabbath service. Others maintained aSaturday Sabbath service but had a Sunday weekday service that includeda major sermon or lecture. This has almost entirely fallen by thewayside, especially as people no longer need to go to lectures to havesome entertainment.

십자가 상징의 사용

윌로우 크릭 교회는 상징들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심벌들을 개인적인 신앙의 표현으로서만 기능하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는 사람들의 신앙을 결정해 버리는 권위적인 것으로서의 상징이 아니라, 개인적인 신앙의 표현으로서만 기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현대 교인들과 사람들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how to be better

"As John Wesley wrote, "We are always open to instruction, willing to be wiser every day than we were before, and to change whatever we can change for the better."1"[Making Disciples]

주일의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Sunday begins at sunset on Saturday evening, in accordance with the custom of the Christian communities that originated in Judaism. The Fatehers of the Chruch -St. Augustine and St. Leo the Great, for example - emphasize this point in dealing with the faithful of Africa and Rome, because these were accustomed to a different way of calculating the successive days. When authorization was given to celebrate Sunday mass on Saturday evening for pastoral reasons, this was consonant with the practice of the early Christian generations.

the meaning of methodist

"By Methodists I mean a people who profess to pursue (in whatsoever measure they have attained) holiness of heart and life, inward and outward conformity in all things to the revealed will of God; who place religion in an uniform resemblance of the great Object of it; in a steady imitation of him they worship in all his imitable perfections; more particularly in justice, mercy, and truth, or universal love filling the heart and governing the life."[Making Disciples]

목사와 그의 가정

목사와 그의 가족목사는 자신이 목회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분명한 의식과 함께, 동시에 자신의 가정을 위한 사역에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목회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한 성도들의 기대가 자신의 가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 목회와 가정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목회자의 자녀는 "Pastoral's kinds"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아이들일 뿐이다. All the blessings and problems come with the kids.

Class meeting in methodist

John Wesley, "Many met together to consult on a proper method for discharging the public debt. And it was at length agreed (1) that every member of the society who was able should contribute a penny a week; (2) that the whole society should be divided into little companies or classes, about twelve in each class; and (3) that one person in each class should receive the contribution of the rest and bring it in to the stewards weekly."4243"[Making Disciples]"When it became impracticable for leaders to visit each member weekly, the groups began to meet at the leaders' homes or at the meeting house.43"[Making Disciples]"This class structure soon became the norm for each Methodist society because of the "benefits of Christian fellowship. Each person in a society became a member of a class that met weekly to "'bear one another's burdens,' and 'naturally' to 'care for each other.'"4445"[Making Disciples]"The design of the class was "that we will meet together once a week to 'confess our faults one to another, and pray for one another that we may be healed.'"45"[Making Disciples]
"Since the qualification for Methodist membership was not conversion but the desire for conversion, it followed that many were converted after they joined the society and class."46"[Making Disciples]"The rules for the band were very strict, with eleven questions to be answered upon entering the band and five questions addressed at each meeting. "1. What known sins have you committed since our last meeting?""2. What temptations have you met with?""3. How was you delivered?""4. What have you thought, said, or done, of which you doubt whether it be sin or not?""5. Have you nothing you desire to keep secret?56"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끔을 당한 것인가? (강제성)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셨지만, 그 중에는 강제로 이끎을 당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지 않으면 어디로 갈 것인가? 사막 한 가운데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가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믿음이 없어도 교회 밖에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가나안을 향해서 같이 가는 것이다. 함께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우리는 책임 있는 사람들로 부름을 받은 것인다.

렘브란트의 그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때에 폭풍을 만나 고전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배의 밑전에서 주무시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림.특이한 것은 배 위에서 고생하고 있는 제자들이 13명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13번째 제자로 렘부란트는 자신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이 이야기에서 제외시키고자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이 제자들이 하고 있던 똑같은 마음의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트 안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 믿음이 부족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안계시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보트안에 계시다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주님이 안계신것 같은 삶의 고된 상황 속에서, 자신을 믿음 없는 12제자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세상에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혼자 살 수 없습니다.우리는 천국에 혼자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물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고.

the anomymous Letter to Diognetus:The life of the early Christian

They live in their own countries, but only as aliens. They have a share in everything as citizens, and endure everything as foreigners. Every foreign land is their native land, and yet for them every native land is a foreign land. They marry, like everyone else, and they beget children, but they do not cast out their offspring. They share thir board with each other, but not their marriage bed. It is true that they are "in the flesh," but they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flesh." They busy themselves on earth, but their citizenship is in heaven. They obey the established laws, but in their own lives they go far beyond what the laws require. They love everyone, and by everyone they are persecuted.

Easter Egg and Easter Bunny

부활절 달걀과 부활절 토끼는 앵글로 색슨족의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부활절기는 앵글로 색슨족의 Easter절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절기는 봄의 여신인 이스터를 위한 축일이었다. 여기에서 달걀은 겨울을 깨고 봄이 오는 것을 상징하였고, 토끼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였다. 이것이 후대에 기독교 전통과 결합되면서, 부활절 달걀은 죽음을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게 되었다.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을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사랑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학하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서로를 만날 때 웃으면서 안부를 묻는 것의 효과입니다. 서양 아이들은 얼굴을 어쩌다 한번 스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보면 인사를 합니다. Hi! How are you doing?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다 형식적인 인사고 형식적인 대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정말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그렇게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죠.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내가 한두 번 본 적만 있고,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형식적으로 그 사람에 제게 물어온 그 인사에 눈물이 난 적인 있었습니다. 정말 힘들고 벗어나고 싶은데, 그 사람이 제게 how are you doing?이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형식적인 질문이었지만, 그 질문이 저의 가슴에 박혀와서 정말 그 사람을 붙들고 내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토해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저를 모르는 사람이 안부를 물어와도 가슴이 찡한데...여러분 이렇게 교회 안에서 지내는 우리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진지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른들께서 우리 청년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 줄 아시잖습니까? 지쳐보이고 고민있어 보이는 청년들 있으면, 그저 가서 어깨 한번 두드려 주시고...한번 웃어 주세요. 말이 많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그냥 어깨 두드려주면서 '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 '공부는 어때?' '직장 생활은 어때?' '힘든 것은 없어?'물어봐 주세요. 청년들 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좀 더 가지고 서로 웃어주고 위로해 준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있어 인간의 가치

Imagine that I am handing you a new, crisp one-hundred-dollar bill. Would you want it? Probably so! Suppose I crumpled it up so it wasn't quite as good-looking as it was the day it came from the mint. Would you still want it? Sure! But wait, what if I took it out in the parking lot, threw it on the ground, and stomped on it "until the picture on the bill was barely perceptible? It뭩 now dirty, stained, and soiled. Would you still want it? Of course. Why? Because it is still valuable despite the rough treatment it has experienced. A hundred dollars is a hundred dollars (forgetting about exchange rates, inflation, and other factors, for the moment). It doesn뭪 lose its value simply because it has aged, is not as pretty as it once was, or has taken some bumps and bruises in life."That뭩 the way God sees each one of us. We all go through challenges and struggles. Sometimes we feel like that hundred-dollar bill, all crumpled and soiled. But just as that hundred-dollar bill still has value, we do, too! In fact, we will never, ever lose our value. Our value has been placed in us by the Creator of the universe, and nobody can take it away from us.""Don뭪 let other people, systems, or circumstances influence your estimation of your value. You may have gone through some traumatic, painful experiences in which somebody mistreated you, used you, or rejected you. Maybe your husband or wife walked out on you and you went through a bitter divorce. Maybe a good friend turned on you for no reason, and you now feel alone and worthless. Or, maybe you felt rejected as a child, and"you are living with feelings of guilt and shame. Perhaps you뭭e even convinced yourself that the negative things that happened in your past are all your fault, that you deserve nothing but heartache, pain, guilt, and condemnation.Friend, nothing could be farther from the truth.[Your Best Life Now]
[Your Best Life Now][Your Best Life Now][Your Best Life Now]

The meaning of "bless God"

For first-century Jews, giving thanks and blessing are closely related terms.
And much of it is done in the context of reciting those historical acts of God for which one gives thanks.
Thus one blesses God for creation, deliverance, and a whole series of benefical events.

Leadership Strategies

Leadership Strategies for Change-
Necessary Steps1. Gather information and define the problem to be solved(Articulate a vision)
2. Build coalitions of people to work on it.
3. Mobilize resources.

- Leadership Tricks of the Trade
1. Getting both grassroots support and the blessings of the elite.
2. Horse-trading and knowing what people value most.
3. Dislodging old routines and bending the rules.
4. Acknowledging and working through conflict.
5. Empowering people, but still setting high standards.
6. Sharing rewards and recognition.

Seven Habits For Adaptive Leadership

1. Curiosity: be aware of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as well as his or her community.Paying attention to what is new and what is going on in my community and the world.
2. Disciplined self-assessment: look critically at your own resources and culture. Ask what we are, and what we have. This is to figure out where resources are.
3. Playful experimentation: create new events, programs, and structures that bring old and new together, but be willing to fail.
4. Entrepreneurship: Think outside the box about possible new resources of money and partners.
5. Creativity and Imagination: Act out your changing identity in ritual, story and picture.
6. Deep Hospitality: intentionally train "outsiders" to become participating members, being willing to accept the gifts these new comers bring.
7. Conflict Management: There is no change without conflict and those who are unwilling to face it will not change. Don't be afraid of the person who says 'I don't like this!'

The true meaning of healing

When Jesus reappeared to his disciples, he was perfectly cured even though he still had the marks of nail and the spear:
참된 치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통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간직한 채로 더욱 성장된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Who Sanctify the Church?

The Unread Vision (Keith F. Pecklers)
-많은 사람들은 생각한다: The Church is sanctified through its personal piety."
Pelagian view도 이와 비슷하다: "Christiansthrough personal piety and good works sanctified the Church and built the reign of God."
이러한 생각에 대해서 William Busch는 의문을 제기한다. "We do not make the Church holy, but it is the Church that makes us holy; we are all embraced in the Sanctity of Christ without whom we can do nothing; it is by our incorporation into one Body in Him that we are made the holy people of God. (99)
# 현대의 많은 성도들은 기도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그렇지 않은 교회보다 더 거룩하다고 이야기한다. 교회의 거룩성은 성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정체 성에 의해서이다. The Church = the Body of Christ.

- At Mass the poor are rich, and the rich are no more than the poorest of the poor. The Mass takes us from the humanity of Christ to his divinity, from earth to heaven. (113) # 주님앞에 드리는 예배 안에서,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성찬 안에서 모든 사람은 천국에서의 동등함을 누린다. 모든 사람들은 예배에 참여할 때, 빈부와 지식의 많고 적음과 신앙의 더 좋고 못함을 떠나서 모두가 똑같은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알렉산더 슈메만 연구: 세속화 시대 속에서의 예배의 적절성 (나형석 교수)

출처: 한국기독교연구소
http://historicaljesus.co.kr/view.php?id=article&page=1&sn1=&divpage=1&category=6&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41

그리스도의 교회 예배 자료

http://kccs.pe.kr/zb41/zboard.php?id=worship_ms

새 번역 주기도문/사도신경

새 주기도문·사도신경 채택 (예장통합/아이굿뉴스) http://www.igoodnews.net/WZ_NP/section/view.asp?tbcode=TB01&cseq=1&seq=7256 ’주기도문’에 ‘아버지’는 성차별적 표현? (한겨례)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5/005000000200505140935001.html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예배 자료 모음

장례예배 인터넷 자료 (사랑의 교회 경조부) http://www.rokcc.co.kr/process/process_4.htm 상.장례 절차 (일반) http://www.root.re.kr/myo/separation/book8-4.htm 장례관련 사이트 목록 (조문넷) http://www.jomun.net/phtml/data_view.php?no=10&p=1&amp;key=&keyword=&param=3 기독교 장례문화 개발을 위한 10가지 아이디어 (송 길원) http://hwoijoong.hihome.com/lecture9.htm 신촌포럼 (장례문화 어떻게 할 것인가) http://shinchon.kehc.org/cell/forum4.htm 그리스도교 祭禮 儀式의 한국문화 土着化 과제에 관한 연구 (김 경재 교수) http://www.hanshin.ac.kr/~press/explanation/h.disser/h.disser14-2/1.htm 장례에 대한 교회사적 고찰과 루터의 장례식 설교에 관한 소고 (김 문기 교수) http://sgti.kehc.org/data/person/mgkim/05.htm 장례예배 관련 좋은 논문 소개: 전 병식 목사, 한국감리교회에 있어서의 장례의식의 토착화 모형연구: 선교적 장애와 목회사역적 갈등의 극복을 위해. 클레어먼트신학대학원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 (A Model for the Indigenized Funeral Rites in the Korean Methodist Church: Cultures in Conflict in Pastoral Ministry)

Daum 카페 | 예전학 배움터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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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 Jesus Statue, Monroe, Ohio. Roadside 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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